말속에 자연 54
망종(芒種) / 보리는 익어서 먹고, 볏모는 자라서 심어
망종(芒種)은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오는 절기로 양력 6.5~6.6 경이다. 망종은 가시레기 망(芒)에 씨 종(種)을 써서 까끄레기가 있는 종자(볍씨 등)를 뿌리기 좋은 때라는 뜻이다. 보리는 이 시기에 수확을 하고 모내기 마무리가 겹치는 때라 한창 바쁘다. 남쪽지방에는 보리농사가 많아서 더 바쁘다. '발등에 오줌을 싼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바쁜 시기이다.
농촌 들녘을 가장 먼저 푸르게 하는 것이 보리다.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라는 말을 한다.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망종'이라는 말도 있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도 있다. 망종까지는 보리를 베어야 논일과 밭갈이를 할 수 있다. 보리를 수확하여야 보릿고개도 넘길 수 있었다. 망종을 넘기면 심은 모가 바람에 쓰러지는 수가 있다. 지금은 모판에서 모의 성장기간이 10일 정도 줄어 소만(小滿) 무렵에 모내기를 시작한다.
'망종 보기'라 해서 망종이 드는 시기에 따라 흉풍을 점쳤다. 음력 4월 이내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되어 빨리 거둘 수 있고, 윤달이 들어 음력 5월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늦어져 망종에도 보리 수확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망종이 4월에 들면 보리의 서를 먹게 되고, 5월에 들면 서를 못 먹는다'는 말이 있다. 보리의 서를 먹는다는 말은 풋보리를 처음 먹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양식이 부족하였던 예전에는 보리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풋보리를 베어서 먹었다.
풋보리를 손으로 비벼 알을 내어 볶고 갈고 채로 쳐서 가루를 만들었다. 그걸로 죽을 만들어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풋보리죽은 소화가 잘 되고 열을 내리는 효과가 있다. 보리는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풍부해 소화가 잘 되고, 철분과 엽산이 있어 빈혈에 좋고, 카페인이 적어 음료로서도 좋다. 망종 때 보리를 그을려서 먹으면 여름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도 했다. 보리를 밤이슬에 맞혔다가 그다음 날 먹으면 허리 아픈데 약이 되고 그해에 병 없이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망종 무렵 매실과 오디가 익는 시기여서 매실청이나 오디즙을 만들어서 마시면 피로와 갈증을 해소하는데 유용하다.
망종 무렵 농사 일거리는 끝도 없다. 일을 멈추는 것을 잊는다고 망종(忘終)이라는 말도 한다. 보리는 혹독한 추위를 참고 견뎌야 봄에 결실을 볼 수 있다. 예전 사람들은 태산보다 높다는 보릿고개를 넘어 살았다. 망종은 우리 삶에서도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희망을 거두는 시간을 의미한다. 내가 무미하게 산다면 삶의 보릿고개가 지금이다. 삶에도 새로운 씨앗을 뿌리고 정성껏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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