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속에 자연 51
홍일점 (紅一點)
무성한 초록 속에 붉은 꽃 한 송이
어릴 때 집 마당에 꽃밭이 있었다. 장독대 바로 옆에 꽃밭에는 늘 꽃이 피어 있고, 여름에 비가 오면 파초가 새로운 잎을 펼쳐서 하늘을 열었다. 겨울이 되면 꽃밭에 꽃들은 자취만 겨우 남고, 작은 석류나무 하나가 한쪽을 차지했다. 석류나무는 크지 않아 자리 차지는 하지 않는다. 나무는 굽고 비틀어졌지만 고목이라 하기에는 작은 나무였다. 석류나무는 봄이 되면 꽃이 아름다웠고, 여름에 달린 열매는 나뭇가지가 늘어질 정도로 컸다. 겨울에 보는 모습과는 또 다르다.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무제 때 장건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마늘, 오이, 호도, 포도, 석류를 가지고 왔다. 석류는 열매가 큰 혹(瘤)처럼 생겨서 안석국(安石國)에서 가져온 혹처럼 생긴 과일이라고 안석류(安石榴)라 하였다. 안석국은 카스피해 남부인 지금 이란지역에 있던 고대왕국이다.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안석류라 했는데 석류가 되었다.
석류나무 꽃은 5~6월에 가지 끝에 붉은색으로 피는데 향기는 없다. 열매는 막으로 된 여섯 개 작은 방이 있는데, 씨앗이 그 방에 꽉 들어차 있다. 석류의 류(榴)에 유(留)는 씨앗이 많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씨앗이 많다는 것은 왕성한 생산력을 의미한다. 9~10월에 붉은 과육이 터지면서 투명 구슬 같은 씨가 드러난다. 물기가 어려 더 싱싱하다.
석류꽃 꽃받침은 작은 종모양을 이루며 갈라지고, 여섯 장 꽃잎이 진한 분홍빛으로 핀다. 석류나무 꽃을 보고 당송팔대가 한 사람인 송나라 왕안석은 '무성한 초록 속에 붉은 꽃 한 송이 (萬綠叢中紅一點)라고 하였다. 석류꽃이 홍일점이요, 홍일점의 유래가 되었다. 그 뒤 홍일점이란 말은 '많은 남자 중 유일한 여자', ' 여럿 중 하나의 이채로운 것'을 뜻하게 되었다.
고려시대 무신정권 때 사람들을 모아 석류를 주제로 시를 짓게 했다. 이규보는 '옥 같은 얼굴에 술기운 처음 돌아 / 발그레한 빛 온통 감도네'로 시작하는 시를 지었다. 그는 과거 급제를 하고도 관직을 맡지 못하였는데, 이 시로 벼슬길이 열렸다. 술 좋아하는 사람다운 글이었다. 그 뒤 팔관회에서 일어난 예법을 문제 삼아 이규보가 위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변산에서 배를 기다리는 동안 그곳 사람들로부터 며칠 동안 술대접을 받았다. 술에 취해 배를 타는 줄도 몰랐다던 위인이다.
석류는 목안이 마르는 것과 갈증에 좋다. 석류 열매는 갱년기 장애에 좋은 천연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석류로 만든 여성 음료가 많다. 예전에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란 문구를 앞세워 석류로 만든 음료 열풍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석류를 맛보면 새콤달콤한 것이 입맛을 돌게 하고 목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석류나무는 추위에는 약하지만 손질을 별로 하지 않아도 되는 나무다. 다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산다면 석류나무 한 그루는 꼭 심고 싶은 나무이다.
'자연의 향기 > 자연의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0) | 2025.05.07 |
---|---|
입하(立夏) 지나면 더위가 문턱을 넘는다 (0) | 2025.04.30 |
곡우(穀雨), 봄비가 내려 백곡(百穀)을 기름지게 한다 (0) | 2025.04.19 |
무릉도원(武陵桃源) / 복사꽃이 피는 별천지 (0) | 2025.04.14 |
청라(菁蘿) 언덕은 무밭에 장다리꽃이 핀 곳 (0) | 2025.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