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속에 자연 47
무릉도원(武陵桃源)
복사꽃이 피는 별천지
복사나무는 봄을 대표하는 꽃나무 중 하나이다. 산에는 생강나무와 진달래가 첫 꽃소식을 알린다. 매화가 질 즈음 살구꽃이 피고, 살구꽃이 한창일 때 앵두나무 꽃이 피고, 살구나무 꽃이 다 지자 복사꽃이 화려하다. 복숭아나무는 꽃을 중심으로 보면 복사꽃이다. 복사나무는 중국 서북부 고산지대가 원산으로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 때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전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한다.
살구꽃이 은은한 연분홍이라면 복사꽃은 화려한 진분홍이다. 꽃잎이 아름다운 데다가 수술머리에 금빛까지 반짝여 그 화려함을 더한다. 그래서 미인을 보고 복사꽃처럼 어여쁜 여인이라 하였다. 시경에는 시집가는 젊은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복사꽃에 비유하였다. 복사나무와 오얏나무인 도리(桃李)는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형용하는데 널리 썼다.
맛있는 복숭아는 점차 신선이 먹는 과일로 쳤으며 병마를 쫓는 선약(仙藥)이 되기도 한다. 중국 곤륜산에 사는 신선인 서왕모는 천도복숭아를 먹어 불로장생하였고, 동방삭은 그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먹고 신라의 시조 혁거세를 낳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복숭아 신맛이 출산을 안전하게 한다는 것과 연관도 있지만 복숭아는 원기를 불어넣는 보양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복에는 삼계탕을 먹지만 중복과 말복에는 복숭아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복사나무는 귀신을 쫓고 요사스러운 기운을 없애는 역할을 한다. 양기가 충만한 나무라 귀신같은 음기를 내쫓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았고, 복사나무를 울 안에 심지 않았다. 복사나무가 있으면 조상신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대문 위에 복사나뭇가지를 꽂아두거나, 복사나무로 공예품을 만들어 귀신의 근접을 막기도 했다. '귀신에 복숭아 방망이'란 말이 있다. 무엇이든지 그것만 보면 꼼짝 못 하게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쓰는 말에 쓴다.
복사나무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에 등장한다. 복사꽃이 피는 아름다운 땅을 도원낙토(桃園樂土)라 하였고, 복사꽃 물에 떠내려오는 별천지 무릉도원(武陵桃源)도 그런 땅이다.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꿈에 보았던 복사꽃이 피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복숭아 오얏 앵두나무 꽃을 뜻하는 도리앵화(桃李櫻花)는 자연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4월 중순이 가까워 오자 집 뒷산에서 복사꽃이 활짝 피었다. 평소에도 이곳을 무릉도원으로 여기고 다닌다.
세 그루의 꽃을 먹으면 복사꽃처럼 얼굴이 밝아진다는 말이 있다. 실제 복사꽃과 열매는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얼굴빛을 윤기 있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복사꽃 피는 아름다운 땅에 복사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만큼 아름다운 땅이 있을까. 이런 곳이야말로 무릉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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