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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심우시(尋牛詩)'

향곡[鄕谷] 2006. 5. 16. 22:41



심우시(尋牛詩)

 

                                만해(1879~1944)

                                번역 김상일(동국대 교수)

 



 

 

이 물건 원래 찾을 곳 없는 것 아니나

산속엔 다만 흰구름만 깊었어라.

깊은 골 깎아지른 벼랑 오를 수 없고

바람 일자 범이 울고 용마저 우짖누나.

 

여우 살쾡이 가득한 산 몇 번 지났을까

고개 돌려 예가 어디인지를 다시 묻는다.

홀연 풀을 헤쳐 보고 꽃자취를 밟아가다

다른 길을 무에 다시 찾을 필요 있으랴.

 

지금 하필 그 소리를 다시 들을까

밟고 찬란한 모습에 읍하고 뒤따라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서서 보노라니

털과 뿔 본디 이런 것이 아니네.

 

보았으나 잡을 수 없다 의심이 다시 들어

흔들리는 모심(毛心) 누르기 어려워라.

그 고삐 내 손에 있음 단박 깨치니

이는 분명 원래부터 떨어진 적 없었든 듯.

 

꼴 먹이고 길 들이며 보호해 줌은

혹여 저 야성이 날뛰어 진속에 들어갈까 봐.

한시라도 코뚜레와 멍에가 없다면

지금 모든 게 사람의 손이 필요하리.

 

채찍 그림자 쓰지 않고 귀가길 맡겨두니

산과 물 연기 노을에 막혔어도 무슨 방해가 되리.

날 저물어 긴 길의 풀을 다 먹어 치우니

봄바람 불지 않아도 풀향기가 입으로 들어오누나.

 

물과 산으로 마음껏 뛰어다녀

종일토록 청산녹수에 노니네.

이 몸 비록 복사꽃 핀 들에 있어도

선꿈은 외려 작은 창문 새로 들어오누나.

 

색이 공만인 것이 아니라 공 또한 공이거늘

막힌 곳이 없었으니 통할 것도 없구나.

티끌 세상의 불립문자 천검(天劍)에 의지하니

어찌 천추(天秋)토록 조종(祖宗)이 있음을 허용하리.

 

삼명육통(三明六通)은 원래 힘쓸 것이 아니거늘

어찌 눈 멀고 다시 귀먼 것처럼 하랴. 

돌아보니 털과 뿔이 밖으로 나지 않았는데

여전히 봄은 찾아와 백화가 만발하구나.

 

진흙 속에도 물속에도 마음대로 오가면서

끝없이 울고 웃는 모습 얼굴에 드러나지 않네.

훗날 망망한 고해 속에서도

다시금 연꽃으로 불꽃 속에 피게 하리.

 



 

 

 

☆동국대는 2006.5.4일 만해스님의 한시 심우시(尋牛詩)가 적힌 10폭짜리 병풍을 공개했다. 이 날 공개한 작품은 만해스님이 직접 붓으로 쓴 7언절구 형식의 '심우시' 10수로, 만해스님의 불교사상과 저항정신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동국대 동문 정재철씨(전 국회의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최근 모교에 기증하였고 일반에 공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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