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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자연의 향기/숲향 이야기

식물박사 이영노

향곡[鄕谷] 2006. 10. 12. 17:02

“지난달에도 새로운 억새풀 찾았어”
70년째 산 오르며 식물학 연구… 250종 발견한 이영노 박사
한라산 250번·백두산 20번 답사 한국식물 99.9% 담은 도감 펴내…
“美·英서도 식물 감정 부탁해와”





“잎이 넓고 이삭의 털이 긴 것을 보니 이건 새로운 식물입니다. 억새 속 (屬)의 새로운 종(種)인데, ‘장수억새’라고 이름을 붙이려고 해요.”  한국 식물학계의 원로인 이영노(86) 한국식물연구원 원장은 지금도 전국의 산을 오르내리며 현장 연구를 계속 중이다. 1936년 전주사범학교 시절 ‘들풀과 꽃나무에 미치기 시작한’ 때로부터 올해로 꼭 70년째 그의 식물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달 22일엔 충북 단양 소백산에서 세계 학계에 전혀 보고된 적이 없는 새로운 식물을 또 발견했다. 식물학계로서는 큰 발견이지만 그로서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발견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관례인 식물 학명(學名)에 그의 이름 영문 이니셜인 ‘Y. Lee’가 들어간 식물이 모두 250종에 달한다. 노랑무늬붓꽃·태백기린초·한라새둥지난·동강할미꽃 등이 그가 이름을 붙이고 학명을 지은 식물들이다.
 
조류 연구의 권위자인 원병오 경희대 명예교수는 “이 원장 같은 사람은 세계적으로 한 세대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한 학자”라고 평가한다. 영국 왕실식물원, 베를린 자유대학 식물원, 스미소니언박물관 등 외국에서도 그에게 자료를 요청하고 새 식물종의 감정을 의뢰할 정도다. 이 원장은 “여러 해 전엔 영국 학자들이 나를 찾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채집한 새로운 식물을 보여주기에 내 이름을 서명해서 감정서를 써줬더니 고맙다고 두 손으로 받아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식물 4157종의 사진과 해설을 담은 ‘새로운 한국식물도감’(교학사·전 2권)을 펴냈다. 두 권 합쳐 1860쪽에 달하는 거질(巨帙)이다. 한국의 식물 99.9%를 담았다는 설명이다. 책 속에 담긴 사진은 거의 모두 직접 발로 뛰며 찍은 것이다.
 
“한국의 식물을 대강 4000여종이라고 하는데 사실 얼마나 되는지 나도 잘 몰라요.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식물은 한반도의 거의 모든 식물을 망라했다고 봐도 될 겁니다.”
 
 그가 1936년 전주사범학교 시절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일본인 교사로부터 칭찬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선생님이 왕벚나무 꽃봉오리의 관찰도를 그리라고 했는데, 100명 중에서 내 것이 제일 잘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식물들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그냥 빠져들었죠. 일제시대 식물학의 대가인 모리 다메조(森爲三) 경성제대 교수는 ‘식물학을 하려면 이영노처럼 해야 한다’고 학교 회지에 쓰기도 했습니다.”
 
 청년 이영노는 전주사범을 나와 한때 교사생활을 했지만 식물 연구의 꿈은 누르지 못했다. 결국 서울대 사대 생물과와 미국 캔자스주립대를 거쳐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6년까지 이화여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70년간 식물학 연구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산이란 산은 안 올라가 본 데가 없다. 제주도 한라산은 250차례나 올랐고, 백두산을 20번쯤 답사했다. 80대 중반의 나이인 요즘도 매주 2~3일 산에 오른다. 이번주에도 새로 발견한 ‘장수억새’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소백산에 다시 갈 예정이다.
 
“내년에는 내가 발견한 식물 250종만을 모아 화려한 도판으로 책을 낼 생각입니다. ‘억새 연구소’를 만드는 것도 꿈입니다. 조금 더 젊었으면 ‘단풍연구소’ ‘들국화연구소’ ‘참나무연구소’ 등을 만들어 연구하면 좋겠는데…. 주요 식물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 산사태 예방과 경제 조림(造林)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연구를 토대로 각 지역에 가장 알맞은 식물을 심어 우리나라 전체를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거죠.”

 

 
 
 
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
 
조선일보 200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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