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섬 이야기/섬으로 간다 121

쌍계사 상록수림 / 운림산방에서 첨찰산으로 가는 천년수림

진도 여행 7 쌍계사 상록수림 (천연기념물 제107호) 운림산방에서 첨찰산으로 가는 천년 수림 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운림산방(쌍계사) 주차장-쌍계사-약수터 : 왕복 2.6㎞ (2018.11.21) 진도 쌍계사는 운림산방 옆에 있는 절인데 절 옆으로 개천이 양쪽으로 흐른다고 쌍계사이다. 양쪽 개천은 상록수림이 덮고 있다. 운림산방과 같은 주차장을 쓰고 있는 쌍계사 일주문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첨찰산 가는 수림으로 들어가면 된다. 첨찰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산길에서 약수터까지 아름다운 숲길 1.3㎞를 왕복으로 걸었다. 상록수림인 동백나무, 후박나무, 참가시나무, 종가시나무, 생달나무, 차나무, 광나무, 붉가시나무와 낙엽성 나무인 졸참나무, 자귀나무, 느릅나무, 말오줌때나무, 실거리나무, 소사나무, 윤노리..

운림산방 / 한국 남종화의 산실

진도 여행 6 운림산방(雲林山房) 한국 남종화의 산실 전남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2018.11.21) 운림산방 / 전남 진도 운림산방은 한국 남종화 화맥의 산실이다. 진도읍에서 남동쪽 방향 첨찰산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월요일이 휴관인줄 모르고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고 이틀 뒤 다시 찾아갔다. 일가 직계 5대가 화맥을 잇고 있는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이 고향 진도로 돌아와 일군 화실의 당호이다. 첨찰산 깊은 산골에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 모습을 보고 운림산방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운림산방은 크게 구분하자면 연못 뒤에 있는 ㄷ자 기와집 운림산방과 소치가 기거하였던 초가로 된 살림채와 서화를 전시하고 있는 소치기념관이 있다. 소치 허련(1809~1892)은 진도에서 태어나 처음 초우선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

세방 낙조와 굴포 일출

진도 여행 5 세방 낙조와 굴포 일출 전남 진도군 지산면 세방리, 임회면 굴포리 (2018.11.19~20) 세방낙조는 아름다운 일몰 전망대로 이름이 높다. 진도 지도에도 아예 세방낙조라 하였다. 세방리 앞바다에 떠 있는 섬 사이로 지는 일몰이 장관이라 하여 남도석성을 탐방한 후에 그곳으로 갔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으나 구름이 바다 위에 가득하였다. 한반도에서 가장 늦은 해넘이를 볼 수 있다는 낙조전망지에서 그 장관을 보는 기회는 구름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어야 했다. 세방낙조에서 가까운 진도 자연휴양림 숙소로 갔다. 굴포리에 있는 휴양림은 바다를 보고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푸른 바다와 섬을 볼 수 있고, 난대 수종들이 있는 또 하나의 전망대였다. 하룻밤을 묵은 후에 아침에 식사를 하기 전에 나..

남도석성 / 삼별초 진도 최후의 방어성

진도 여행 4 남도석성 (사적 127호) 삼별초 진도 최후의 방어성 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2018.11.19) 남도석성은 진도읍에서 팽목항으로 가는 길 왼쪽에 있다.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성이었으나 삼별초군이 개축하였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었다. 이곳은 제주도에서 오는 길이기도 하지만 왜구들이 들어오는 길목이기도 했다. 진도는 외침이 잦아 백성들은 피난살이가 많았고 삶은 그만큼 어려웠다. 고려말 왜구의 침공으로 백성들은 섬을 떠나 87년이 지난 후 돌아오기도 하고, 정유재란 때도 명량해전을 비롯한 많은 전투에서 이곳 사람들이 죽었다. 성은 높이 4m, 둘레 610m인 작은 성이다. 공식 이름은 남도진성으로 부르고 있다. 삼별초군은 용장성에서 9개월간 버티다가..

용장산성 / 삼별초 대몽항쟁 근거지

진도 여행 3 용장산성 (사적 126호) 삼별초 대몽항쟁 근거지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2018.11.19) 용장성 궁궐터 울돌목에서 벽파진으로 가다가 보면 오른쪽으로 용장산성으로 가는 표지석이 서 있다. 고려 원종 11년(1270년) 고려 정부가 몽고와 강화를 맺고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려 하였다. 삼별초군은 이에 불복하여 대몽항쟁 결의를 하였다. 삼별초는 최 씨 무신정권이 몽고에 대항할 무력 기반을 위해 만든 특수부대이다. 삼별초군은 원종의 6촌 동생인 온(溫)을 왕으로 추대하여 강화도에서 남하했다. 그리고 진도 벽파진에 상륙하여 용장성을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진을 쳤다. 고려 고종18년(1231년) 몽고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던 사신이 피살된 것을 구실로 고려를 침입하기 시작하여 30년간..

벽파진 / 울돌목의 길목

진도 여행 2 벽파진 울돌목의 길목 전남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2018.11.19) 벽파진 / 진도 벽파리 해남에서 울돌목에 있는 진도대교를 건너면 진도이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큰 섬인 진도는 다리를 놓고 나서는 섬 아닌 섬이 되었다. 땅이 넓고 기름져서 농산물이 해산물보다 풍성하다는 곳이다. 울돌목을 지나 용장성 바깥 벽파진으로 갔다. 이곳에는 벽파진 할아버지라는 바람신이 있다고 했다. 바람이 불 때에 손님을 가득 실은 나룻배가 벽파 나루를 떠날 즈음이면 백발노인이 나타나 배 떠나는 것을 막고 뒤이어 오는 돌풍을 막았다는 것이다. 벽파진은 울돌목의 길목이다. 지금은 다리를 놓아서 그 역할이 거의 없지만 오랫동안 진도의 관문이었다. 과거에는 해남에서 오던 버스가 배에 실려 이곳으로 건너왔다. 그 옛..

울돌목 / 명량해전 승전지

진도 여행 1 울돌목 명량해전 승전지 전남 해남, 진도 (2018.11.19) 울돌목 / 진도대교가 있는 곳이다 울돌목은 전남 해남 화원반도와 진도 녹진 사이에 있는 좁은 수로로 가장 좁은 곳이 150m이다. 우리나라 해수역에서 조류가 가장 빠르다는 곳이다. 가장 빠를 때는 11.5노트(24㎞)라는데, 보통은 7노트(13㎞)에서 10노트(18.5㎞)이다. 음력 보름과 그믐이 가장 빠르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굴곡이 심한 암초 부근에서 물결이 회오리 쳐서 불규칙적으로 흐르면서 빠르다. 가만히 귀를 대고 있으면 쏴아~ 쏴아~ 소리가 난다. 물결이 흐르며 소리를 내고 울어 울돌목이요, 한자로는 명량(울 명(鳴), 대들보 량(梁))이다. 이순신 장군은 1597년 음력 9월 16일 적이 올라온다는 보고를 받았다. ..

입파도 / 일출과 일몰을 보는 섬

입파도 (立波島) 일출과 일몰을 보는 섬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국화리 (2018.9.10) 입파도는 국화도에서 북쪽 5㎞에 있다. 섬은 남북 방향으로 길쭉하다. 제일 높은 봉우리는 등대가 있는 북쪽 봉우리로 해발 100m 정도이고, 남쪽으로 오면서 낮아져 평균 높이는 50m 정도다. 남쪽 끄트머리는 해식과 풍화작용에 의해 생긴 낭떠러지인 해식애(海蝕崖)가 있어 경사가 급하다. 해변은 좁아서 파도가 치면 파도를 맞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래서 서서(立) 파도(波)를 맞는 섬(島) 입파도(立波島)라 하였다. 섬은 면적이 0.44㎢로 12명이 살고 있는데, 민박집이 7곳이다. 섬은 남북으로 길어서, 동쪽으로는 일출을 서쪽으로는 일몰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을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많다. 우리가 탈 마..

국화도 / 바닷길이 2개 있는 섬

국화도(菊花島) 바닷길이 2개 있는 섬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국화리 (2018.9.10) 세계에서 섬이 제일 많은 나라가 인도네시아, 그다음이 필리핀, 일본이며, 우리가 네 번째이다. 우리나라에 섬은 3,348개로 그중 유인도가 47개, 무인도가 2,878개이다 (2017년 말 기준). 면적이 넓지 않은 나라에 섬이 정말 많다. 몇 년 전부터 시작한 섬여행은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올해는 처음 나섰다. 경기도 화성 궁평항에서 배를 탔다. 올망졸망 섬이 많다. 섬이라는 것이 유엔해양법 협약에 따라 '물로 둘러 싸여 있고, 밀물 때도 수면 위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지역'이라 한다. 들락날락하는 리아스식 해안이 많은 우리나라가 그래서 섬이 많다. 궁평항을 떠나서 40분만에 국화도에 도착했다. 화성 궁평항에서 ..

소야도 / 덕적도 옆 한적한 섬, 떼뿌루해수욕장 지나 막끝까지

덕적군도 4 소야도(蘇爺島) 덕적도 옆 한적한 섬, 떼뿌루해수욕장 지나 막끝까지 인천광역시 옹진군 나루개-국사봉-떼뿌루해수욕장-막끝-왕재산(142.8)-떼뿌루해수욕장 이동거리 8.5㎞ 이동시간 3:00. 휴식시간 0:39. 계 3:39 (2017.9.25) 소야도는 대부도 방아 선착장에서 배로 1시간 40분 정도 가는 섬이다. 덕적도가 바로 옆에 있다. 신라가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으려고 사신을 보냈을 때 출항지가 덕적도였다. 그때 덕적도는 신라의 영역이었다. 신라의 요구로 당나라가 응하여 소정방을 우두머리 삼아 원군을 보내 머무른 곳이 소야도이다. 소정방이 머문 곳이라 하여 소정방의 소(蘇), 아비의 뜻인 야(爺)를 써서 소야도라 하였다. 뜻있는 이곳 주민들은 소야도가 사대적인 이름이라 하여 그전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