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굴뚝 6

고성 왕곡마을 / 옹기 굴뚝 전통마을

고성 왕곡마을 옹기 굴뚝 전통마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2020.8.16) 송지호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간성 쪽으로 조금 가면 길 왼쪽에 왕곡마을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그 표지판 왼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1.3㎞ 정도 가면 왕곡마을이 있다. 봉우리가 5개인 오봉리에 있는 마을은 600년이나 된 오래된 마을이다. 길에서 잠시 들어와 있을 뿐인데, 산으로 둘러 싸여 보이질 않아 전쟁도 피해 갔다는 곳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효자각 앞으로 마을로 들어선다. 바다에서 5리가 채 안 되는 곳인데 마치 산촌 같다. 마을은 양지바른 곳에 아래 위로 길게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전통가옥 보존지구로 지정되고 대부분 새로 복원공사를 하여 집들이 말끔하다. 집은 ㄱ자나 ㄷ자 집이 많다. 한..

숭림사 / 오붓하고 정감 어린 고찰

숭림사(崇林寺) 오붓하고 정감 어린 고찰 전북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2009.11.8)   금강을 사이에 두고 충남 서천에서 금강대교를 넘어서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익산이고, 금강하구둑 철새도래지를 지나 고티나는 벚나무가 올망졸망 줄을 선 오붓한 숭림사가 있다. 금마의 미륵사와 같은 시대에 만든 절로 나라 원찰인 미륵사와 달리 동네 절처럼 단아해서 정감이 간다. 절 입구에는  스님이 나와 바람이 나오는 기구를 어깨에 메고 연신 낙엽을 날려보낸다. 낙엽을 일부러라도 두는데 스님도 참 부지런하다. 고려말에 창건한 절인데 대대적 보수를 하였는지 고티는 적으나 부지런한 스님만큼 깔끔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숭림사란 절 이름이 달마대사가 중국 하남성 숭산(崇山) 소림사에서 면벽좌선한 고사에서 유래하여 숭산의 숭..

굴뚝 / 아궁이에서 하늘로 가는 통로

굴뚝 아궁이에서 하늘로 가는 통로 굴뚝은 굴+독이 합하여 뒤에 굴뚝으로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굴뚝은 아궁이에서 생긴 연기가 밖으로 나가는 통로이다. 아궁이는 조왕신이 드나드는 곳이요 굴뚝은 하늘나라로 연결되는 길인 것이다. 사람들은 굴뚝이 막히기 전까지는 굴뚝 수리를 잘하지 않았다. 연기가 잘 빠지게 하기 위해 굴뚝을 높이 세웠는데, 굴뚝이 막히면 징을 치면서 '뚫어'라고 소리치며 굴뚝을 청소하러 다니는 사람에게 맡겨서 얇고도 긴 대나무로 꺼멍을 긁어내기도 하였다. 어린아이들 말대로 산타클로스가 굴뚝으로 들어온다는데 옷을 더럽히지 않게 청소를 해두어야 했다. 쇠솥에 군불을 때며 굴뚝으로 모락모락 올라가는 연기는 정겹기만 하다. 옹기 굴뚝, 나무 굴뚝, 함석 굴뚝, 기와와 흙으로 쌓아 올린 굴뚝은 정이 ..

신륵사 / 여강이 흐르는 품격있는 절집

유유한 여강이 흐르는 품격있는 절집 여주 신륵사 /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2007.12.8) 나옹선사가 양주 회암사에서 밀양땅으로 가다가 잠시 머물던 신륵사에서 그만 입적하였고, 대모산에 있던 세종릉이 이곳 여주에 오면서 이 곳을 왕실 원찰로 삼아 절집 살림이 커졌다. 신력(神力)으로 다스릴(勒:륵) ..

토굴 송와일표(松窩一瓢)

토굴 송와일표(松窩一瓢) 홍천군 내촌면 (2007.10.27) 친구가 마음을 닦는다고 자주 찾아가던 토굴에 갔다. 친구 왈 든 자는 주인이요 난 자는 객이라는데, 친구가 없는 집에 하루 주인이 되었다. 사물을 고요히 관찰하면 그 이치가 얻어진다 했는데 심심산골에 들어와 세상의 이치를 얻으려 했을 것이다. 첩첩산골 찾아간 집 송와일표(松窩一瓢) 명패는 뚜렸하고, 사람없는 집엔 다람쥐가 주인 이었다. 주인 없이 여름을 보낸 흔적이 뚜렸한 대나무 평상에 짐 부려 놓고 마당에 널부러진 밤송이를 주워 부엌에 군불을 지폈다. 아궁이 연기에 눈물을 쏟고 마당 흙 사이로 연기가 자욱하다. 샘물을 길어 밥을 짓고 탁배기로 목을 축였다. 장작을 패서 난롯불을 지피고 초를 밝혔다. 촛농은 뚝뚝 떨어지고… 밤이 깊어 갔다. ..

덕수궁 / 경복궁이 불타 행궁으로 쓰던 곳

덕수궁 (德壽宮) 경복궁이 불타 행궁으로 쓰던 곳 서울 종로구 정동 (2007.6.8) 고종은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 신고를 하고 덕수궁으로 들어갔다. 덕수궁은 황궁이 되었다. 정문은 큰(大) 편안함(安)을 주던 문(門)인 대안문(大安門)이었는데, 크게(大) 하늘(漢)과 통하는 문(門)인 대한문으로 바꾸었다. 대안문에 불이 나자 궁궐에 갓 쓴 여인(安)들이 다녀 불이 났다고 1906년 고종 때 안(安) 자를 한(漢)으로 고쳐 대한문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집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정궁인 경복궁이 불타자 선조가 이곳을 임시 행궁으로 삼았다. 그 뒤 광해군이 즉위할 무렵 창덕궁이 완성되면서 궁궐의 기능도 잃고 이름도 경운궁(慶運宮)으로 바꾸었다. 지금 이름은 고종이 태황제로 물러나면서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