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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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제사 3

선농단과 향나무 / 왕이 밭을 갈고 제를 올리던 곳

선농단과 향나무왕이 밭을 갈고 제를 올리던 곳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2024.9.27)   조선시대 국가의 기간산업은 농업과 잠업이었다. 그래서 왕은 친히 밭을 가는 친경(親耕)을 하였고, 왕비는 누에를 치는 친잠례(親蠶禮)를 하였다. 서울 제기동에 있는 선농단(先農壇)과 성북동에 있는 선잠단(先蠶壇)은 이런 의식을  거행하던 제단이었다. 왕이 친히 밭을 갈던 터와 선농단이 있던 곳이 제터로 지금 제기동(祭基洞)이다.  전철 1호선 제기동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선농단 300m라 쓴 표지판이 보인다. 선농단은 인간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하는 고대 중국 전설상의 제왕인 신농(神農)과 후직(后稷)에게 왕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 성종 때 조성한 선농단은 일제가 동양척식회사를 설립하면서 터를 뺏..

놋그릇(유기) / 집안 생활정도의 한 척도였던 유물

놋그릇(유기 鍮器) 집안 생활정도의 한 척도였던 유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맏이였던 나는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나무로 만든 제기(祭器)는 따로 주문하였지만 놋쇠로 된 밥그릇(주발)과 국그릇(대접)은 어머니가 물려주셨다. 나중에 어머니 돌아가시면 쓰라고 어머니 것까지 같이 주셨다. 예전에 집에는 놋그릇이 많았다. 종류별 식기류는 물론이고, 주걱, 화로, 부젓가락, 요강, 촛대, 재떨이 등이 놋쇠로 만든 생활용품이었다. 감자를 긁던 놋숟가락은 반쯤 닳았고, 놋 국자는 들기가 무거웠고, 널마루 밑에 들어가도 떨어진 놋젓가락을 주을 수 있었다. 놋그릇은 연탄이 들어오면서 녹청이 생기고 변질되어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어느 날 그릇 장사들이 다니며 스테인리스 그릇과 바꿔준다 하니 어머니는 집안에 있던 놋그릇을 다 ..

왕릉과 숲 12. 구리 동구릉 3. 혜릉(慧陵.경종비),원릉(元陵.영조),수릉(綏陵.추존 문조),경릉(景陵.헌종)

왕릉과 숲 12 구리 동구릉 3. 혜릉(慧陵. 경종비), 원릉(元陵. 영조), 수릉(綏陵. 추존 문조), 경릉(景陵. 헌종)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혜릉(慧陵) : 조선 20대 경종비 원비 단의(端懿) 왕후 심(沈)씨 (1686-1618.32세)의 능 (단릉) 원릉(元陵) : 조선 21대 영조[英祖. 연잉군. 숙종 둘째 아들. 어머니 숙빈 최 씨. 1694.9-1776.3(82세). 재위 51년 7개월(1724.8-1776.3))와 두 번째 왕비 정순(貞純) 왕후 김(金)씨 (1745-1805.60세)의 능 (쌍릉) 수릉(綏陵) : 추존 문조(曉明세자→翼宗→文祖. 23대 순조의 첫째 아들. 1809-1830(21세)와 신정(神貞)왕후 조(趙)씨(1808-1890.82세)의 능 (합장릉) 경릉(景陵) :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