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릉 1
장희빈, 숙종의 비, 영조의 비가 묻힌 곳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사적 제198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2008.12.20)
서울 서쪽과 고양시가 만나는 곳에 서오릉이 있다. 햇볕 따스한 고을이라 고양(高陽)이라 이름을 얻은 것이 조선 태종 때이니 800년이 다 되어 온다. 창릉 익릉 명릉 경릉 홍릉 5기의 왕릉이 서울 서쪽에 있다 하여 서오릉이다.
조선 왕실 묘는 능(陵) 원(園) 묘(墓)로 구분을 하는데, 능은 왕과 왕비, 원은 세자와 세자빈, 세손과 세손빈, 빈의 무덤이고, 묘는 제빈, 왕자, 공주, 제군 등 무덤을 일컫는다. 조선 27대 왕의 무덤은 왕과 왕비, 추존왕 무덤까지 44기인데,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서오릉이다.
세조 때 원자였던 큰아들(뒤에 덕종으로 추존)이 죽자 묘터(경릉 敬陵)로 삼은 곳이 서오릉의 시작인데, 그 뒤 덕종의 동생인 예종과 계비가 묻힌 창릉(昌陵),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가 묻힌 익릉(翼陵), 숙종과 계비인 인현왕후 그리고 제2계비 인원왕후가 묻힌 명릉(明陵), 영조의 정비인 정성왕후가 묻힌 홍릉(弘陵) 까지 5기인데, 그밖에 명종의 아들과 공빈이 묻힌 순창원이 있고,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 어머니인 영빈이 씨가 묻힌 수경원, 유명한 숙종의 후궁 장희빈이 묻힌 대빈묘도 있다. 이렇듯 서오릉엔 한 많은 궁중 여인네의 음택이 줄줄이 있어서 궁중 역사를 다시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 익릉(翼陵)과 수경원
서오릉 매표소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사도세자 어머니인 영빈 이 씨 무덤인 수경원(綏慶園)이 처음에 있고, 여기를 지나면 높은 곳에 조선 19대 임금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 무덤인 익릉이 있다.숙종이 즉위하자 13살에 왕비가 되었으나 천연두를 앓아 20살에 죽었다. 딸은 셋을 두었으나 죽기 전에 딸을 미리 둘을 잃은 기구한 운명이다. 숙종이 능제를 간소화하는 정책을 내리기 전에 만든 무덤이라 문무인석과 망주석 등 석물이 장대하다.
수경원(사도세자 어머니 영빈 이 씨 무덤)
익릉(숙종의 정비 인경왕후릉)
○ 경릉(敬陵)
익릉에서 나와 순창원을 지나면 추존왕 덕종(德宗)과 그의 비 소혜왕후 무덤이 있다. 왕비 무덤 석물은 화려한데 비해 덕종의 무덤은 소박하다. 왕비는 생전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덕종은 추존되기 전에 대군이어서 격에 맞는 무덤을 만든 때문이다. 덕종은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병약하여 스물에 죽었는데, 소혜왕후 사이에 월산대군과 성종을 낳았다. 아녀자가 지켜야 할 도리를 적은 여훈(女訓)이 소혜왕후가 쓴 책이다. 나중에 폐비 윤 씨 사건을 연산군이 알고 길길이 날뛰자 이를 말리던 할미가 소혜왕후인데 말리다가 연산군 머리에 받혀 죽었다.
경릉(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릉)
○ 홍릉(弘陵)
경릉을 지나 가벼운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길 왼쪽에 숙종의 넷째 부인이자 경종의 어머니인 장희빈 묘소인 대빈묘가 있다. 수많은 풍파를 일으키고 후세 사람들이 요녀라고 부르는 장희빈이다. 봉분도 석물도 초라하여 조그만 담에 둘러 싸여 있다. 대빈묘를 지나 언덕을 넘어서면 전에는 군부대가 있어서 가지 못한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무덤인 홍릉이 있다. 후사는 없었지만 생전에 낯빛이 밝고 정성이 지극하여 영조가 좋아하였고 옆에 묻히길 원했으나, 영조가 죽은 후 손자 정조가 선왕 영조를 동구릉에 모시는 바람에 지금도 이 자리는 텅 비어 있다.
희빈 장 씨 대빈묘
홍릉( 영조 원비 정성 왕후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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