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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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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 2. 예종,숙종,인형왕후가 묻힌 능

향곡[鄕谷] 2008. 12. 20. 22:30

 

서오릉 2 

예종, 숙종, 인현왕후가 묻힌 능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사적 제198호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2008.12.20)

 

 

 

서오릉엔 지체 높은 왕족들이 묻혀 있지만 왕릉 조성을 주관한 세조나 숙종은 왕릉을 크고 화려하게 만드는 것을 경계하여 소박하게 조성하려고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후대에 내려오면서 묘역이나 봉분, 정자각도 작아지고, 석물 숫자도 제한하고, 호위하는 석호(石虎)나 석양(石羊)도 실물에 가깝게 작아졌다.

 

왕릉 옆 비각엔 묻힌 자의 직위와 내력을 기록해 두었는데, 특이한 것은 비를 세운 때가 병자호란 수년 뒤였는데 명나라 마지막 왕인 숭정(崇禎) 연호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청이 쳐들어온 이듬해인 1937년 1월 추운 겨울날,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삼전도에서 무릎 꿇고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으면서 명나라의 연호를 쓰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명나라는 청을 세운 지 8년 뒤 망하기는 했지만 조약 후에도 반청친명(反淸親明)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고 이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창릉(昌陵)

홍릉을 지나 숲길을 돌아가면 금천교 건너 외진 곳에 창릉이 있다.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를 모신 능이다. 세조 둘째 아들인 예종은 세조가 죽고 왕을 물려받은 지 1년 조금 넘어 20살에 죽었다. 형 덕종이 왕노릇을 못하고 일찍 죽었는데 예종 또한 그러하였다. 세조의 아들 넷 모두 오래 살지 못하였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낸 업보를 받은 탓일까. 그러한 업보를 피하고 싶은지 숲길을 따라 외진 곳에 숨어있다.

 

 

 

 

창릉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릉)

 

 

 

○ 명릉(明陵)

4기의 능을 모두 둘러보고 다시 입구로 나오면 매표소 건너에 명릉이 있다.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가 같이 누워있고 왼쪽 비스듬한 위쪽에 따로 제2 계비인 인원 왕후릉이 있다.  숙종이 능제 간소화를 주장하던 대로 소박하게 꾸며 놓았다. 다른 능과 달리 목책으로 막아 놓지 않아서 석물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상석을 괸 받침돌엔 사자상을 새겨 왕릉의 품위를 높여 주었다.

 

숙종은 제위기간도 45년으로 길었고, 양란 후 혼란하던 나라에 민생을 수습하고 북벌을 위해 국방을 정비하느라 애도 썼지만 정쟁도 극심하였다. 딸만 둔 정비 인경왕후에 이어 계비 인현왕후와 제2계비 인원왕후가 모두 후사가 없고 장희빈과 암투로 궁궐생활이 무척 힘이 들었을 테지만 모두 숙종과 가까이에 묻혀서 죽어서 안식을 취하였다

 

  

 

 

 

 

 

 

 

 

 

 

 

 

  

 

 

 

 

 

 

 

 

 

 

 

 

 

 

 

 

 

 

 명릉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가 같이 있고, 제2계비 인원 왕후릉이 떨어져 있다) 

 

 

 

※ 서오릉 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47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