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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우리도 산처럼/설악산

설악산에서 잠자는 일

향곡[鄕谷] 2009. 10. 5. 19:08

 

설악산 16

 

설악산에서 잠자는 일

  

 

어제 설악산 봉정암 절에 갔다가 겨우 잠자리를 구했는데, 요즈음 설악산에서 등산을 하면서 산장을 잡아서 자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등산 인구가 늘어 설악산 속에서 숙소를 정하기가 만만치 않아 무박산행이 늘었지만, 오래전에는 산장을 잡기가 쉽지 않아 텐트를 짊어지고 다니기도 했다. 

 

30 수년 전 설악산 가서 숙소로 처음 삼은 곳은 백담사였다. 좀 특이한 경우지만 백담사에서 잠을 자고, 저녁식사는 백담계곡 부근에서 해 먹고 다음 날 아침은 영시암터로 가면서 해결하였다. 한 번은 백담사 건너편에 가게 옆에 민가가 있어서 민박을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 집 총각이 아침에 산에서 캤다며 송이버섯을 주기에 된장찌개에 넣어 먹기도 하였다. 그 뒤로 그런 송이는 비싸서 먹어보지 못했다. 백담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백담산장에서 잔 일은 없지만 한밤 중에 들러 윤두선 산장주인으로부터 팝콘을 얻어먹기도 하였다. 모두가 오래전 얘기이고 지금은 백담사에서 등산객을 받지도 않지만 부근에서 밥을 해 먹을 수도 없고 절 앞에 가게도 민가도 없다. 

  

소청봉에 있는 소청산장은 예전부터 산꾼들이 즐겨 찾는 산장으로 좀 여유가 있는 산장이었다. 선착순이란 제한이 있지만 그래도 설악산에서 구름과 별과 달을 보고 일출을 모두 구경할 수 있어서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산장이요, 중청산장이나 봉정암에서 방을 얻지 못한산꾼에게 희망을 주는 산장이다. 한 번은 소청봉에서 온천지에 구름이 가득한 아침이었는데 한줄기 햇살이 구름 속을 뚫고 봉정암 사리탑만을 스포트라이트 비추듯 하던 광경은 지금도 잊지를 못한다.  

 

죽음의 계곡에서 해외원정대가 훈련 중 10명이나 죽어 이를 안타까이 여긴 최태묵선생이 그의 호를 따서 이름 짓고 세운 대피소가 희운각(喜雲閣)이다. 공룡능선 올라가는 밑둥치인 천불동계곡 위에 있어서 공룡능선을 타는 산꾼들이 애호하는 산장이다. 소청봉에서 급경사 하산길을 1시간 내려오면 서있는 산장이다. 일찍 도착하여 자리는 구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간고등어 포개듯이 잔 적이 있었고, 자리가 없어 밖에서 바깥에서 비닐을 깔고 잠을 청하다가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뜬 눈으로 세운 경우도 있었고, 잠이 안 와서 산장 가까이 무너미고개에 가서 환상적인 별구경을 한 적이 있었다. 신혼여행은 설악산에 갔었는데, 배낭을 메고 희운각까지 올라갔다가 얼음이 꽁꽁 언 것을 보고 하산한 적도 있다. 

 

 

 

희운각 

 

 

천불동계곡 양폭 바로 밑에 있는 양폭산장도 기억에 남을 산장이다. 지금은 보수 중이지만 학교 다닐 때 두어 번 묵었는데, 비 오는 날 양폭산장에서 곤란한 지경에 있던 어떤 스님을 도와드렸다가 1년 뒤 우연히 만나 그 스님으로부터 전국불교미술 서예부문 특선작을 선물로 받은 일이 있었다. 당시에는 1,2층이 마룻바닥이었는데, 등산 수요가 늘어나 빨리 보수가 끝나기를 기대하는 등산객이 많을 것 같다. 

 

지금 봉정암 바로 앞 요사채로 쓰는 건물에는 전에 봉정산장이 있었다. 아래 위층 마룻바닥으로 된 큰 건물로 중청산장이 생기기 전 설악산 산꾼에겐 아지트였다. 매점도 하고 산장도 운영하던 산장 주인은 낮엔 속초에 가서 물건을 떼어서 파는 데 주먹밥을 바위 밑에 두었다가 물건을 짊어지고 오다가 끼니로 해결하였다. 당시 소주 1병이 120원이었는데 600원 받아도 너무 힘든 일이기에 말도 못 하고 사 먹었다. 산장이 없어지고는 비가 억수로 오거나 하는 경우 봉정암에서 산꾼들을 받았는데 법당 안이 꽉 찼다. 봉정암은 지금은 숙소를 만들어 신도 위주로 방에 재우는데 작년부터 예약제로 하고 있다. 워낙 자는 사람이 많아 방에 줄을 긋고 모두 받아들이려 하나 자는 사람이나 받아들이는 절이나 어려움이 많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듯싶다. 

 

 

봉정암 / 큰 건물이 산장이었던 자리에 지은 요사채 (2009.10.5)

 

 

 

 미리 예약만 한다면 가장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곳이 중청산장이다. 대청봉이 부근에 있어서 정상에 오르기도 쉽고 부근 여러 곳으로 하산 지점을 잡을 수 있는 중청봉 부근에 있다. 그래도 설악산 다른 잠자리보다는 한결 여유로운 곳이라 할 수 있다. 

 

 

 

 중청산장 / 대청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