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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대첩기념공원 / 이순신장군 첫 승전지

향곡[鄕谷] 2016. 10. 25. 23:17

 

거제 가을여행 3

 

 

옥포대첩 기념공원

이순신 장군 첫 승전지

 

경남 거제시 옥포동 (2016.10.23. 흐리고 바람)

 

 

1592년 4월 14일 부산포로 침략한 왜적은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가 5월 2일 한양을 점령하였다. 경상도 바다에서 적군에 밀리자 거제의 경상우수사 원균은 여수의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순신은 함대를 지휘하여 그해 5월 7일 거제도 옥포 선창에 있던 적선을 일시에 공격하여 26척격파하니 첫 해전이요, 첫 승전이었다. 첫 승전을 기념하는 공원을 이곳에 마련하였다. 지금은 대우해양조선이 항구 안에서 배를 만들고 있으며, 기념공원에는 이충무공사당, 기념탑과 전시관이 있다.  

 

기념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귀신 폭탄이라는 비격진천뢰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조총에 맥없이 무너졌지만 해전은 화포로 적을 무찔렀다. 하늘에서 날아와(날 비.飛) 땅에 떨어진 후 (부딪칠 격.擊) 하늘을 울리는 우레(진천뢰 震天雷)는 적이 있는 곳에 도달할 때쯤 폭발하는 시한폭탄이었으니 정신이 나갈만도 하다. 이장손의 발명품이다.

 

난중일기가 있다. 일기를 보면 어려웠던 전란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옥포해전에서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 태산같이 침착하게 행동하라'고 준엄하게 명령을 내렸다. 명량해전에서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라며 결사적으로 전쟁에 임하였다. 이순신의 현조는 홍문관 대제학이고, 증조가 대간이었듯 문신 집안 자제로 살았던 문기가 말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이순신장군은 백성을 하나같이 아끼고 전사한 부하 이름을 다 적어 애달파하였다. 유성룡은 자신의 직을 걸고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하였으며, 거북선 건조의 국가 허가를 적극 도왔다. 이순신이 수군통제사에서 해직된 후, 선조가 극형에 처하려 하자 판중추부사 정탁은 온몸을 던져 명장을 죽여서는 안된다며 백의종군으로 명하게 하였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자, 선조는 '사소한 왜적을 물리치는 것은 장군의 당연한 직분이 아닌가' 라며 품계를 올려주는 것도 거절하였다. 이순신의 죽음을 들은 선조는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비변사에서 알아서 처리하라' 하였다. 충무공이란 시호를 내린 것은 이순신이 돌아가신 45년 후 인조 였다. 이순신장군은 나라를 구할 줄 모르는 왕 밑에서 의병들처럼 외로운 싸움을 하다가 전장에서 돌아가셨다.

 

                  

 

 

이충무공 사당

 

 

 

 

옥포 앞바다가 보이는 사당

 

 

 

 

비격진천뢰

 

 

 

 

 

 

난중일기

 

 

 

 

거북선

 

 

 

 

판옥선

 

 

 

 

옥포대첩기념탑

 

 

 

 

 

참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