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운명
어릴 때 학교 다니던 초여름에 뒷산에 가서 송충이를 잡은 일이 몇 번 있었다. 송충이를 잡아 깡통에 담아 시간이 되면 한 군데 모아 처리하였다. 좀 일찍 마치면 나무 밑에 떨어진 소나무 껍질을 주어 와서 운동장 옆에 있는 탄지라고 하는 연못에서 띄우고 놀았다. 그만큼 학교 뒷산엔 소나무가 많았다. 지금 도심 부근에는 나무를 베어내고 산을 허물어 건물을 짓느라 소나무가 줄었다. 일제 때는 전쟁물자를 위해 송진을 채취하고, 춘궁기에는 구황식으로 소나무 껍질을 벗겨 내느라 소나무가 줄었다. 춘궁기에는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살았다. 초근의 대표는 칡이고, 목피의 대표는 소나무 껍질이었다. 소나무 두꺼운 껍질을 벗기고 그 안에 물기가 있는 얇은 부분을 벗겨서 허기를 달랬다.
소나무 껍질은 거북등처럼 생겨 현무(玄武)를 상징하기에 산소 옆에 심었다. 세월이 지나 '못난 소나무가 산소를 지킨다', '굽은 소나무가 고향을 지킨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모양이다. 요즈음은 소나무의 에이즈라는 재선충 때문에 나무가 점점 병들어 죽고 있다. 재선충을 옮기는 것이 솔잎깍지벌레와 북방수염하늘소라 한다. 솔잎깍지벌레가 소나무 껍질 속에 가늘고 긴 잎을 꽂고 수분을 흡수하면서 3주가 지나면 수분과 영양분 이동 통로를 막아서 나무가 아래로부터 말라죽는다는 병이다. 1960년대 초 전남 고흥에서 시작한 재선충은 해안선을 타고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재선충은 나무속에 있어 농약으로 박멸이 불가능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구 평균 기온이 점점 올라가 소나무가 사는 영역도 줄어들고 있다. 2100년도에는 1990년보다 기온이 2도 상승하여 난 온대림이 북위 40도까지 올라가 남서해안은 아열대림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난온대림이 2100년에는 1990년의 1/10로 줄어들어 지리산, 태백산 등 높은 곳에만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삼림의 수종도 바뀌어 북상할 것이고, 숲은 말라 초원이나 다른 수종으로 바뀔 것이다. 숲이 줄면서 소나무의 생육 가능 면적도 100년 사이에 1/5로 감소한다는 전망이다. 소나무를 쳐다보며 우리가 보는 소나무가 점점 줄어드는 이유를 생각하였다.
※ 참고도서 : 소나무. 한중일 문화코드 읽기. 종이나라. 2005년.
※ 산 다니며 찍은 사진 중 소나무 껍질만 모아보았습니다.
소나무 / 북한산 (2017.10.25)
소나무 / 북한산 (2017.10.25)
소나무 / 신선봉 (경기도 양평. 2016.7.3)
소나무 / 중원산 (경기도 양평. 2016.7.24)
소나무 / 청계산 (경기도 성남. 2012.5)
소나무 / 황정산 (충북 단양. 2006.7.2)
소나무 / 가리봉 (강원 인제. 200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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