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행 3
용장산성 (사적 126호)
삼별초 대몽항쟁 근거지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2018.11.19)
용장성 궁궐터
울돌목에서 벽파진으로 가다가 보면 오른쪽으로 용장산성으로 가는 표지석이 서 있다. 고려 원종 11년(1270년) 고려 정부가 몽고와 강화를 맺고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려 하였다. 삼별초군은 이에 불복하여 대몽항쟁 결의를 하였다. 삼별초는 최 씨 무신정권이 몽고에 대항할 무력 기반을 위해 만든 특수부대이다. 삼별초군은 원종의 6촌 동생인 온(溫)을 왕으로 추대하여 강화도에서 남하했다. 그리고 진도 벽파진에 상륙하여 용장성을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진을 쳤다.
고려 고종18년(1231년) 몽고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던 사신이 피살된 것을 구실로 고려를 침입하기 시작하여 30년간 6차례나 침입하였다. 고려는 침입 다음 해 무신정권에 의해 정부를 강화도로 옮겨 40년간 끈질지게 대항하였다. 그렇게 40년이 흘러 무신정권이 몰락하게 되자 조정은 환도를 하게 되고 삼별초군은 저항한 것이다.
배중손을 지도자로 한 삼별초군은 1천여 척 배로 와서 용장성을 근거지로 9개월을 저항하다가 고려와 몽고 연합군에 의해 퇴각하였으며, 퇴각 중 배중손이 전사하였다. 남은 삼별초군은 진도 주민 1만여 명을 포로로 삼아 제주도로 건너가 2년을 버티다가 1273년 진압되었다. 삼별초군이 진압된 후에 고려는 몽고 종속정권이 되어 100여 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용장산성은 그전부터 있었던 성이었으나 삼별초군이 보수하였다. 성은 토성과 석성으로 쌓았으며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벽파진도 용장산성 안에 있는 나루터이다. 성 안은 궁궐이 있었던 석축만 남아 있다. 궁궐터 입구에는 삼별초가 용장성을 세울 때 조성하였다는 석불좌상이 용장사 극락전 안에 있다. 운림산방으로 가다가 보면 고려와 몽고 연합군에 의해 죽은 왕온의 묘가 있고, 왕온이 죽었다는 곳은 지금도 왕무덤 재라 부르고 있다. 부근에 삼별초공원도 조성하여 삼별초의 항몽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고려항몽충혼탑
용장사 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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