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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향기/나무

쥐똥나무에 대한 변론

향곡[鄕谷] 2021. 9. 27. 10:44

 

쥐똥나무에 대한 변론

 

 

 

똥의 조어(祖語)는 '돋-'인데, 더럽다의 어근 '덜-'과 어근이 같다. 똥과 더럽다는 같은 말에서 나왔다. 두엄도 '둘-'이 어근인데 이 또한 같은 어근이다. 옛날에 두엄은 짚에 인분이나 외양간에서 나온 쇠똥이나 돼지똥을 섞어 만들었다. 거름의 주재료는 똥이었다는 얘기다. 농사를 지을 때 꼭 필요한 것이 거름이었다. 똥오줌이 비료였다.

 

그러나 천지창조신화에서 똥은 신성한 것을 여겼으며, 우리 전설에서도 신라 지증왕이 배우자를 찾는데 똥덩이가 큰 처자를 찾아서 왕후를 삼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우리도 길을 가다가 똥을 밟으면 그날은 재수가 좋다고 하고, 똥꿈을 꾸면 좋은 꿈이라 하였다. 한자로 똥을 분(糞)이라 하는데, 쌀 미(米)+다를 이(異)로, '쌀이 달리 된 것'이 똥이다. 그런데도 '머리에 쇠똥도 안 벗거진 놈', '코 똥도 끼지 않는다'는 둥 똥은 더럽고 하찮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 똥이 동식물 이름에 들어가면 어떨까? 개똥지빠귀, 개똥벌레, 쇠똥구리가 동물에 들어간 똥 이름인데, 쇠똥구리야 쇠똥을 굴린다니 그렇다고 치고, 반딧불이라 부르는 개똥벌레는 쇠똥과 개똥 주변에서 잘 발견된다 하는데, 우리가 보는 개똥벌레는 풀밭이나 하늘에서 보는 것이라 별똥별만큼 이미지가 좋은데도 그렇게 부른다. 이영균 작가가 지은 '개똥지빠귀를 위한 변명'이란 책은 똥 얘기를 쓴 책인데, 개똥지빠귀는 개똥과 닮지도 않고 개똥 옆에 가지도 않는데 억울한 이름이라 하였다.

 

식물에 똥이 들어간 이름을 찾을 수 있다. 똥이 들어갔거나 별칭으로 부르는 이름이 여럿 있다. 말똥비름, 방가지똥, 개똥쑥, 애기똥풀이란 풀이름이 있다. 나무에는 똥낭이 변한 돈나무, 열매가 쥐똥을 닮았다는 쥐똥나무, 개똥나무라 부르는 누리장나무, 보리똥나무라 부르는 보리수나무가 있다. 말똥비름은 실눈이 떨어지는 모습을,  방가지똥은 유액을 방가지(방아깨비)가 내뱉는 똥이라 비유하였다. 개똥쑥은 식물체를 비비면 개똥 같은 냄새가 난다고 붙인 이름이고, 애기똥풀은 잎이나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노란색을 애기 똥에 비유한 이름이다. 돈나무는 늦가을에 열매가 벌어져 끈적한 점액이 나오면 파리나 다른 곤충이 모여들고 불쾌한 냄새가 난다 하여 제주말로 '똥낭'이라 하던 것이 변한 이름이다. 또 누리장나무는 잎이나 가지를 찢거나 봄날 싹이 날 때 근처에 가면 누린내가 난다고 붙은 이름이다. 보리수나무는 열매가 보리똥같이 생겼다고 부르는 이름이다. 모두 냄새나 색깔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그 여러 이름 중에 쥐똥나무는 받은 이름이 억울하다. 가을에 열매가 익으면 새까만 것이 크기와 색깔이 쥐똥을 닮아서 붙인 것이라니 그렇다. 쥐는 듣거나 보기만 하여도 징그러운 동물인데 거기에 비유하였다. 봄에 피는 하얀 꽃은 예쁘기도 하거니와 향기가 좋다. 그래서 사람들 사는 주변에 많이 심는다. 이름이 그런데도 좋으니 많이 심는다. 북한식 이름은 검정알나무인데 그 이름이면 그런 생각이 안들 것이다. 쥐똥나무 속명인 Ligustrum은 ligare(묶다)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속 나무 가지로 다른 물건을 묶을 수 있다는 말이고, 종소명 obtustifolium은 끝이 둔한 잎을 가졌다는 뜻이다. 중국어로는 수랍수(水蠟樹)라 하는데 가지에 깍지벌레가 집을 짓는 나무라고 붙은 이름이고, 영어는 울타리나무 또는 윤기 나는 나무란 의미로 Border privet 또는 Wax tree라 부른다. 여러 이름을 비교해 보아도 그렇고, 우리에게 화사한 꽃과 향기를 주는 나무에 대한 이름이 좀 과하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나무인데 누가 대접을 해줄 것인가. 아이를 낳으면 어릴 때 귀엽고 무럭무럭 잘 크라고 똥강아지라 부르는데, 그런 뜻도 아닌 것 같아서 이름을 받은 쥐똥나무는 참으로 억울하다.         

 

 

 

쥐똥나무 (서울 잠실. 4.27)

 

 

쥐똥나무 (위례. 5.25)

 

 

쥐똥나무 (서울 잠실. 5.30)

 

 

쥐똥나무 (서울 잠실. 6.12)

 

 

쥐똥나무 (위례. 7.28)

 

 

쥐똥나무 (경복궁. 8.30)

 

 

쥐똥나무 (남한산성. 10.12)

 

 

쥐똥나무 (헌인릉. 10.16)

 

 

왕쥐똥나무 (거슨세미오름. 11.17)

 

 

왕쥐똥나무 (절물오름.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