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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1. 고슴도치섬 위도 이야기

향곡[鄕谷] 2022. 4. 24. 20:12

 

위도 1. 고슴도치섬 위도 이야기

 

전북 부안군 위도면 (2022.4.20)

위치 : 부안군 변산 격포항에서 서쪽으로 14㎞ (여객선으로 50분)

크기 : 면적 11.14㎢ (여의도 면적 2.95㎢의 4.8배. 전북에서 가장 큰 섬). 해안선 36㎞

섬 숫자와 인구 : 유인도 6개, 무인도 24개. 583가구 984명(2014년 기준)

 

 

 

 

 

 

위도는 변산 격포항에서 수평선 너머로 보일 정도로 가깝다. 작년에 격포항까지 갔다가 바람이 불어 위도로 건너가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 사고로 292명이 희생된 후 바람이 불어 파고가 조금만 높아도 출항 결정에 신중하다. 대형 사고는 그 전에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한 해에 세 번이나 대형 해난사고가 있었고, 1958년 곰소-위도 여객선 사고로 58명이 실종된 일도 있었다. 그러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하는 얘기로는 격포 수성당 당할미인 개양할미와 위도 원당할미 심성을 건드려 심술을 부렸다는 얘기가 있다. 과거부터 위도는 풍랑이 거세어 용왕님께 사람을 바쳐 무사고와 풍어를 빌었다.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도 위도의 수장 풍습을 따랐다는 얘기다. 그러다가 사람 모양으로 돌을 깎아 수장시켰더니 용왕님이 노하여 한꺼번에 생명을 앗아갔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를 한다. 여하튼 위도에서는 정월 초사흘 한 해의 액을 담은 띠배를 띄워 보내는 띠배 놀이가 있어 중요 무형문화재로 남아 있다. 

 

위도는 고려 때는 수군의 요지였고, 유배지였다.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도 잠깐 위도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거문고, 술, 시를 좋아하여 삼혹호(三酷好)선생이라 했는데 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란 별호를 더 좋아했다. 이규보는 정 5품 때 팔관회 잔치에서 예법에 문제가 발생하여 책임을 지고 유배길에 올랐다. 그때 순풍을 기다리느라 부안에서 한 달 반 정도 머물렀는데 문명(文名)이 높은지라 대접받고 있었다. 배 떠나는 날 부안 유지들 술대접을 받고 술이 워낙 취해 배에 오른 줄도 모를 정도였다. 20여 일 만에 유배지가 바뀌어 나왔으니, 부안에서 배를 기다린 날이 유배로 있던 날보다 더 길었다. 이규보는 짧은 유배가 끝나고 승승장구하여 정승 자리에 올랐다. 이규보는 위도 도제봉 아래에 잠시 살았다는 얘기가 있고, 진리에 있는 관아 부근에서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위도에서 이규보의 자취는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조선시대에 위도는 허균이 지은 소설 홍길동전에 나온다. 허균은 함열(익산에 있던 옛 지명)에 유배 와서 홍길동전을 지으면서 이상향으로 삼았던 율도국(栗島國)의 실제 모델이었던 섬이 위도이다. 소설 홍길동전은 초등학교 때 영화로도 나와서 단체로 갔던 기억이 있다.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활빈당 우두머리가 되어 탐관오리 재산을 빼앗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율도국에서 펼칠 이상 사회는 신분의 차별이 없고 탐관오리의 횡포가 없는 사회였다. 

 

900여 년 전 송나라 서긍이 개성으로 가는 뱃길에 위도에 잠시 머물렀다. 서긍은 책 '고려도경'에서 고려의 제도와 풍습을 소개하였다. 그때 위도를 고섬섬((苦苫苫)이라 했는데, 고슴도치 털을 고섬섬이라 했다. 섬에 바람이 많아 나무가 크게 자라지 않아 봉우리에 자그마한 소나무가 고슴도치 털처럼 솟아 있어서 고슴도치섬이라 했다고 했다. 그 뒤엔 섬의 모양이 고슴도치 형상이라 고슴도치 위(蝟)를 써서 위도라 한다. 지도를 살펴보면 삐죽삐죽 나와 있는 돌출부가 많기는 하다. 

 

한동안 위도 앞바다는 서해의 황금어장으로 파시가 열려 장관을 이루었다. 국내 3대 어시장 중 하나인 칠산어장의 중심지로 영광굴비 산지가 이곳이다. 칠산어장은 주위에 일곱 섬으로 둘러싼 바다를 말한다. 조기는 3월에 흑산도, 4월에 위도 부근 칠산어장, 5월이 되면 그 위로 연평도 주변까지 올라간다. 3월에서 6월까지 위도 파장금항에서는 파시가 열려 바로 앞 식도(食島)까지 배가 찼다. 그러나 지금은 파시가 사라지고 없다. 고기도 덜 잡힐 뿐 아니라, 어선이 커지고 냉동시설이 발달하여 직접 날라야 이윤이 더 생기니 파시가 열리지 않는다. 파장금은 물결이 길면 어선이 모인다는 곳인데, 물결이 길다는 것은 풍랑이 몰아친다는 얘기다. 1970년대부터 파시도 옛 얘기가 되었다. 서해페리호 침몰 후 위도로 모이던 낚시꾼도 줄어들었다.  

 

어청도에서 오후 1시에 떠나는 배를 타고 2시간반 뒤에 군산항에 내렸다. 다시 승용차로 새만금 방조제를 거쳐 부안 격포항으로 가서 위도로 들어가는 오후 5시 배를 탔다. 고기잡이 철도 아니고, 낚시꾼들도 없으니 배가 한산하다. 격포항에서 위도로 들어갈 때까지 고슴도치 형상의 섬이 보이는지 갑판에 서서 지켜보았다. 소나무가 고슴도치처럼 보이는 것은 맞지만 섬이 넓고 커서 고슴도치 모양을 뱃전에서는 알 수가 없다. 내일이면 탈 산이 길기도 하다. 파장금에 있는 숙소로 갔다. 1년 전 예약하고 풍랑으로 못 들어가서 그런지 주인이 이름을 부르면서 맞이한다. 선착장 뒤로 넘어가는 파장금 낙조가 아름답다. 감동이 없는 삶이 무미하듯, 하루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저 일몰의 태양처럼 오늘이 그런 삶이 되었을지.

 

 

※ 여객선 (격포-위도) : 12월~3월은 4회, 4~11월은 8회. 물때에 따라 계절별 일자별 출항시간이 달라짐

 

 

 

 

고슴도치 모양 위도 : 진리가 머리이고, 대리가 뒤쪽이며 왼쪽이 고슴도치 발. 식도는 먹이이다

 

 

위도 원경

 

 

위도 원경

 

 

위도 파장금항

 

 

산행 깃점 파장금(상월)

 

 

위도 고슴도치 조형물

 

 

위도 파장금 선착장

 

 

고슴도치길 안내도

 

파장금항

 

위도를 빠져나가는 여객선

 

 

 

 

 

파장금 낙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