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의 벗 '세한삼우 (歲寒三友)'
소나무(松), 대나무(竹), 매화나무(梅)
연초에 날이 차다. 집 앞 소나무에도 눈이 내리고 세상이 하얗다. 추운 날의 벗, 세한삼우가 있다. 겨울 추위에도 보기 좋은 세 가지인 소나무(松), 대나무(竹), 매화나무(梅)를 이른다. 세한삼우는 중국 송나라부터 유행하였다. 매화 대신 국화를 넣어 송죽국(松竹菊)으로 삼기도 하고,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소나무 대신에 돌을 넣어 매죽석(梅竹石)을 세한삼우라 하였다. 고려나 조선시대에 셋을 한목에 소재로 삼지는 않았지만, 각각은 인내와 절개, 지조와 품격을 상징하여 글이나 그림 소재로 많이 썼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그린 세한도(歲寒圖)에는 소나무가 나온다. 논어에 나오는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송백(松栢)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는 글을 적었다. 추사가 유배를 간 기간에도 제자 이상적(李尙迪)은 중국에서 서적을 구하여 제주도까지 보내고 바깥 소식을 전하였다. 추사는 이 그림을 통해서 어려울 때도 변함없는 제자의 인격과 지조에 감동하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그림은 고담하고 간결하다. 세한도는 그림과 글씨 보다는 이것을 그린 동기와 과정에 의미가 있다.
소나무는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산다. 오직 씨앗으로만 크며, 자른 소나무에서는 싹이 올라오지 않는다. 베면 그냥 죽을 뿐이다. 모든 나무 중에 소나무만 그렇다. 소나무는 이른 봄부터 여름이 오기 전까지 한 마디만 성장하고 생장을 멈춘다. 그래서 마디만 세면 나이를 알 수 있다. 1년에 한 마디만 생장하고 속을 채운다. 속을 단단하게 하여 풍파를 이기고, 경쟁을 피하여 사느라 바위가 있는 곳도 마다하지 않는다. 솔향도 있고, 솔잎도 방부 성분이 있어 스스로를 지킨다. 느리지만 자기만의 속도가 있고, 힘을 기르고 위치를 지킨다. 소나무는 바람과 추위의 풍상을 견디며 사는 장생불사(長生不死)로 여긴 나무다. 깊은 산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사는 은자(隱者)의 모습이기도 하다.
대나무는 늘 푸르고 단단하다. 대나무는 더운 나라에서 와서 겨울은 비교적 온난하고 봄철 냉해 피해가 없는 곳에서 산다. 왕대는 장마기간 1개월에 10m나 큰다. 그래서 우후죽순(雨後竹筍)이란 말이 생겨났다. 싹이 돋아난 그해 평생 살아갈 몸을 만든다. 대나무는 마디마다 생장점이 있어 한꺼번에 늘어나 빠른 속도로 자란다. 속은 비어 나이테도 없다. 그래서 풀과 같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줄기와 잎은 살아 있으니 나무와 같다. 꽃은 일생 한 번만 핀다. 집단으로 개화하고 집단으로 고사한다. 땅속줄기가 뻗어나가면 거칠 것이 없다. 대나무는 생리적으로는 풀이요, 형태적으론 나무다. 사계절 색이 변하지 않으니 군자의 품격과 절개로 여긴다.
매화나무는 겨울이 끝나고 봄의 문턱에서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꽃나무다. 꽃을 중히 여기면 매화나무요, 열매를 중히 여기면 매실나무다. 매화는 한겨울을 이기고 불굴의 정신으로 피어나 군자의 지조와 절개에 비유하였다. 은은함은 매화를 대표한 이미지로 선비의 품격을 나타낸다. 양화소록을 지은 강희안은 매화를 칭송하기를, 청빈하고 아름다우며 청아하다고 하였다. 매화는 매서운 추위를 겪어야 맑은 향기를 낸다고 한다. 집안에서 소중히 키우던 매화가 꽃을 피우면 선비들은 벗을 불러 술을 마시며 시를 짓는 모임인 매화음(梅花飮)을 가졌다. 매화에 기대어 품격을 높이고자 하였다.
추사가 세한도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식물에 비유하여 전하였다. 좋은 벗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사람은 어려울 때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도움이 되어야 하며 변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객지에서 가장 좋은 벗은 먼 길 가는 사람에게 친절히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고, 미래에 가장 좋은 벗은 평소에 닦은 선행이라 했다. 내가 친구가 없다면, 스스로 친구 역할을 잘 하였는지 돌아봐야 한다. 나는 평소 열심히 하였는데 어려울 때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내가 덕이 없어 그렇다고 여기면 된다. 살면서 배우는 일은 끝도 없다. 한걸음 한 걸음 걷는 걸음이 늘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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