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오는 우이령길
교현리 - 우이령길 - 우이역
이동거리 7.3㎞. 소요시간 2:30 (2023.12.11. 비. 5.0~12.3℃. 비11.4㎜)
밤새 온 비에 나무와 풀이 젖었다. 비는 소리 없이 내린다. 땅은 비에 젖어 봄날 땅처럼 부드럽다. 지금은 비가 내린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뿌린다고 하였다. 비의 고어가 .블'인데, 뿌리다의 고어 '쁘리다' 의 어근이 '블(쁠)'이다. '블'이 비의 뜻을 지녔고, 그래서 비는 뿌린다고 하였다.
봄비는 만물을 소생시키고, 겨울비는 땅을 마르지 않게 한다. 길가에 산수국 잎도 비에 젖었다. 수국(繡菊)이 수국(水菊)이 되었다. 노박덩굴 열매는 새가 먹은 것인지 빗물에 흘러서 가버린 것인지, 노랑 껍질 속 빨강 열매는 몇 개만 남아 있다. 밤나무도 줄기가 비에 다 젖었다. 밤나무는 옻나무처럼 사람이 사는 마을 가까이에서 자란다. 밤나무 수명은 120년이니 사람보다 조금 더 살 정도이다. 늘 많은 열매를 맺어서 생각보다 오래 살지는 못한다.
나무들은 겨울눈을 만들어 봄이면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한다. 함박꽃나무는 털이 없는 긴 타원형 겨울눈이고, 중국굴피나무는 비늘조각 없이 갈색털을 덮고 있다. 열매처럼 생긴 오동나무 겨울눈은 갈색털을 덮고 있는데 여름부터 만들어서 겨울을 난다. 우리는 나무처럼 얼마나 열심히 삶을 준비하며 살았던가.
겨울이 오는 신호는 잎 가장자리가 마르는 것이다. 마른 잎은 떨어져 땅으로 돌아간다. 흙의 주요 식량 공급원은 죽음이다. 모든 육상의 동물과 식물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우리 운명이다. 비는 가늘지만 계속 내린다. 풀과 나무마다 빗방울이 생명수처럼 맺혀 있다. 늘 동행하는 시인 선생님이 우리 모임을 위해 시를 지어 왔다. 시 한 수가 우리 걸음을 더 아름답게 한다.
그 숲에 가면 백승훈 세상의 착한 나무들이 어울려 사는 그 숲에 가면 우리는 꽃이 되고 나무가 되어 한나절 푸른 하늘 우러를 수 있네 저마다 끌고 온 길 풀섶위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산을 내려가는 냇물처럼 도란 도란 이야기 꽃 피우다보면 세상 시름쯤은 거뜬히 잊을 수 있네 언제나 함께 할 수는 없어도 숲에선 늘 함께 있는 우리는 숲으로 맺은 소중한 풀빛 인연 몸속에 나이테를 품고사는 나무처럼 함께 걸어온 길 가슴속에 곱게 갈무리면 아직 걸어야 할 길이 한나절 남아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 생각하면 잎이 돋고 꽃이 피는 숲으로의 행복한 동행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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