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속에 자연 20
기다리면 꽃 피는 소리도 들린다
연꽃은 여름에 피는 꽃이다. 연꽃은 송나라 학자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로 더 잘 알려졌다. 애련설에서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면서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잔물결에 흔들리면서도 요사스럽지 않다'라고 했다. 주돈이는 성리학의 개조(開祖)로 태극이나 이기(理氣)란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그의 학문은 정호·정이를 거쳐 주희에 이르러 주자학으로 정리되었다. 이 주자학이 조선의 성리학에 영향을 주었다. 그런 주돈이가 애련설을 얘기했으니 연꽃을 군자의 꽃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애련설에서 연꽃은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으며,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까이 두고는 감상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연꽃은 칠팔월 해가 뜨기 전에 핀다. 그래서 선인들은 새벽에 연꽃을 즐겼다. 기다리면 꽃 피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새벽에 배를 띄워서 연꽃에 가까이 다가가 소리를 듣는 풍류를 즐겼다. 이를 청개화성(聽開花聲)이라 한다. 그리고 연향(蓮香)을 맡는 것을 즐겼다. 다산도 이른 새벽 연꽃이 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연못으로 가서 연꽃이 피기를 기다렸다고 하였다.
나는 오래전에 연꽃을 보러 전남 무안 일로읍에 있는 회산 백련지(白蓮池)로 갔다. 그 넓은 방죽이 온통 초록 우산을 받친 것 같은 연꽃이 가득 차 있었다. 연꽃을 본 경험이 적었을 때라 감탄하며 보았다. 연꽃은 뿌리로 번식하기 때문에 큰 공간에 심어야 한다. 작은 공간에 심으면 병약해지고 꽃과 잎도 작아진다. 그런 연꽃은 나중에 열성 유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 양평 세미원은 빅토리아가시연꽃을 보기 위해 예약을 해놓고 밤중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워낙 어두워 연꽃을 찾기 바빴다. 한 바퀴를 돌아서 그 자리로 돌아오니 그 사이에 거짓말같이 연꽃이 더 크게 피어 있었다. 지켜서 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선비들은 연꽃을 감상하고, 기다려서 연꽃이 피는 소리를 듣는 것 외에도 연꽃을 가까이 한 내용이 여럿 있다. 고려말 선비들의 피서음을 보면 연꽃으로 잔을 쓰고 연잎에 술을 붓고서 바늘로 구멍을 뚫어 연대로 흐르는 술을 마셨다. 이를 벽통음(碧筩飮)이라 한다. 하로당(荷露餳)이라는 엿이 있는데 연꽃에 맺힌 이슬을 털어서 곤 것으로 이걸 먹으면 속살까지 예뻐진다고 하였다. 하(荷)가 옛말로 연(蓮)이고 하로(荷露)는 연에 맺힌 이슬이다. 연꽃이나 연잎에 맺힌 이슬을 털어다가 끓인 차가 하로차(荷露茶)이다. 한번 마시면 심신이 상쾌해지고 얼굴에 화색이 돈다고 한다. 연자차(蓮子茶)는 연 씨 껍데기를 벗기고 생강을 넣어 달인 차로 향기와 맛이 그윽하다고 한다.
기다렸다가 연꽃이 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생각만 해도 마음 설레는 일이다. 연잎 구멍 사이로 마시는 벽통음도 좋겠고, 연잎에 맺힌 이슬을 털어서 끓이는 하로차도 좋겠다. 선인들이 즐긴 풍류를 따라서 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요즈음 연잎차는 자주 만날 수 있다. 심신을 안정시키고 기분을 좋게 한다는 차이다. 우선 그것이라도 마시며 연잎향부터 맡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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