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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자연의 향기/자연의 말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

향곡[鄕谷] 2024. 8. 26. 20:10

말속에 자연 21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

 

 

 

송나라 학자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면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하였듯  연꽃은 진흙 속에서 핀다. 속담에서도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름다움을 이루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연꽃같이 살자'라는 말은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자'는 말이다.

 

지구상에 인간이 존재하기 전에 연꽃이 있었고,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전에 이미 연꽃이 있었다. 연꽃은 여러해살이 식물로 아랫부분에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굵은 땅속줄기가 발달한다. 연근은 뿌리라기보다는 줄기에 해당하여 이런 것을 뿌리줄기라 한다. 연근에 구멍이 뚫린 것은 진흙 속에서 숨쉬기 위한 공기저장조직이다.

 

연꽃의 열매가 연밥이다. 연 씨는 연밥 속에 있다. 연 씨는 단단하여 조선의 문인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잠자는 연 씨를 까는 방법은 갈지 않으면 싹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씨가 하도 단단하여 망치로 두드려도 끄떡없다. 연 씨는 썩지 않고 3천 년을 견딜 수 있으며, 천년 이상 땅에 묻혀 있어도 발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장구한 세월을 견디다가도 내피가 일단 물에 노출되면 발아하는 속도는 경이롭다. 무려 1300년 만에 종자가 발아한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발굴하여 700여 년만에 꽃을 피운 아라홍련이 있다.  

 

연꽃이 문헌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시경〉이다. 거기서 연밥을 따는 얘기가 나온다.  남쪽 지방에 갔다가 목만 물 위에 내놓고 연밥을 따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연밥이 익는 가을에는 작은 배를 옮겨 가며 연밥을 딴다. 연밥을 따는 곳은 남녀 사랑의 장소이기도 했다. 허난설헌의 채련곡(采蓮曲)에는 '낭군 만나 물 너머로 연밥을 던지다가 / 멀리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나 부끄러웠네'라는 대목이 있다. 상주민요에도 '연밥 줄밥 내 따줄게 / 이네 품에 잠자주소'라는 대목이 나온다. 조선의 화가 심사정은 백로와 연밥을 그렸다. 한자로 일로연과(一鷺蓮果)인데, 연밥이 한자로 연과(蓮果)이다. 같은 음인 일로연과(一路連果)로 해석하여, 한꺼번에 과거 소과와 대과를 모두 급제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을 지녔다. 

 

연꽃은 사군자가 생기기 전에 군자의 꽃이었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맑게 하여 오랜 시간 모두가 사랑한 꽃이다. 고려의 이제현은 역옹패설에서 귀밑머리가 세도록 연꽃을 사랑하였다고 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못을 만들고 연꽃을 심었다. 그리고 정자를 세워 연꽃과 관련 있는 이름을 붙였다. 원향정(遠香亭) 청원루(淸遠樓) 청향정(淸香亭)은 그렇게 붙인 이름이다. 퇴계도 동쪽에 못을 파고 연꽃을 심어 그 연못을 정우당(淨友塘)이라 했다. 현실에서 마음에 드는 벗을 만나지 못하면 천년을 거슬러 올라 책 속에서 벗을 만난다는 말(尙友千古)이 맹자에 있다. 조선후기 학자 김수증은 여기서도 만족하지 못하면 자연을 벗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그것이 식물을 벗으로 삼는 이유이다. 

 

 

 

연꽃 / 회산 백련지 (전남 무안. 2007.9.1)

 

 

연꽃 / 홍릉수목원 (2019.7.13)

 

 

연꽃 / 세미원 (경기도 양평. 2017.7.19)

 

 

연꽃 / 마현마을 (경기도 남양주. 2016.7.19)

 

 

연밥 / 세미원 (경기도 양평. 2016.7.19)



심사정 그림 '백로와 연밥'

 

 

물에 잠긴 연밥 / 논개사당 앞 (전북 장수. 2009.3.7)

 

 

연밥이 있는 연지 / 김포 장릉 (2021.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