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속에 자연 23
나무를 낳는 새
나무는 새가 낳은 자식이기도 하다
시인 유하가 지은 시(詩) 중에 〈나무를 낳는 새〉가 있다. '찌르라기 한 마리 날아와 / 나무에게 키스를 했을 때 / 나무는 새의 입속에 산수유 열매를 넣어주었습니다 / 달콤한 과육의 시절이 끝나고 / 어느 날 허공을 날던 새는 / 최후의 추락을 맞이하였습니다 / 바람이, 새의 육신을 거두어 가는 동안 / 그의 몸 안에 남아 있던 산수유 씨앗들은 / 싹을 틔워 잎새 무성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 나무는 그렇듯 / 새가 낳은 자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 새떼가 날아갑니다 / 울창한 숲의 내세가 날아갑니다'. 시의 전문이다.
식물이 씨앗을 퍼뜨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열매를 맺은 후에는 여러 방법으로 어미로부터 씨앗을 멀리 보내야 한다. 버드나무 민들레 소나무는 씨앗에 날개를 달아서 보내고, 도둑놈의갈고리나 도꼬마리처럼 이동하는 동물에 달라붙기도 한다. 봉선화나 고사리, 달맞이꽃은 팽창하거나 외부압력으로 씨앗이나 포자주머니를 터뜨려서 보낸다. 향기로운 과육으로 유혹하여 씨앗을 이동시키는 것은 열매를 가진 나무들이다.
과육으로 유혹하는 나무는 산딸기, 산뽕나무, 산앵도나무, 보리수나무, 사과나무 등 종류가 많다. 과육은 사람, 새, 짐승들이 열매로 배를 채우고 씨앗을 이동시키고 전달하도록 한다. 은행나무나 주목나무는 가짜 육질을 만들고 과육에는 독성이 있어 벌레들이 먹지 못하게 하였다.
새들이 먹는 열매는 노박덩굴, 댕댕이덩굴, 작살나무, 괴불나무, 팥배나무, 백당나무, 산수유, 겨우살이, 산사나무, 백목련, 찔레나무 등 크기가 작은 열매이다. 새는 과육을 먹는데, 씨앗은 소화가 되지 않고 창자에 남아 있다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배설하면 씨가 함께 나온다. 과육을 주고 씨앗을 퍼뜨리는 나무의 전략이다. 빨간색과 둥근 모양 크기는 새의 눈에 잘 띄고 삼키기도 좋은 미끼이다.
하찮게 생각하는 씨앗도 새는 먹을거리가 된다. 서양측백나무 열매, 맛이 신 매자나무 열매, 쓰고 텁텁한 마가목 열매, 바짝 마르고 맛이 지독한 팽나무 열매 등 나무 씨앗이나 열매는 새들을 위한 먹이다. 열매가 익어가는 곳은 새들이 즐겨 찾는다. 생각지도 않은 외딴곳에 나무가 자라면 새들의 공로일 수가 있다. 새들이 앉았다가 간 자리는 다시 풍성한 숲을 예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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