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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향기/자연의 말

부평초 인생 /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향곡[鄕谷] 2024. 9. 11. 12:06

말속에 자연 25

 

부평초 인생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개구리밥 / 지리산 산사 (2010.8.5)

 

 

 

'부평초(浮萍草) 같은 인생'은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인생을 말한다. 부평초가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떠다니듯 정처 없이 떠다니는 인생을 부평초라 한다. 부평초 인생이란 허무한 존재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얽매임 없이 다니는 자유로운 삶을 가리키기도 한다. '인생은 평초(苹草)란 말도 하는데, 평(萍)이 부평초 평이다. 평초에 부(浮)를 붙였다.

 

부평초는 우리말로 개구리밥이다. 개구리밥은 개구리가 많이 사는 논이나 못에서 자라고 개구리의 먹이로 될만한 크기라서 붙인 이름이다. 뿌리는 있으되 흙에 내리지 않아 자유로운 듯 보인다. 개구리밥에 비해 개체가 작은 좀개구리밥도 있다. 개구리밥은 뿌리가 여러 개이고 잎 아래가 자색을 띠는데, 좀개구밥은 뿌리가 한 개이고 아랫면이 대체로 녹색이다. 

 

개구리의 옛 이름은 머구리였고, 개구리밥의 명칭도 오백 년 이상 머구리밥이었다. '머'나 '개'나 모두 물을 뜻하고, '구리'는 벌레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개구리밥은 청개구리와 색깔이 비슷하여 같이 있으면 구별할 수가 없다. 그러니 개구리밥은 개구리를 먹이로 찾는 철새를 피하기에 좋은 은신처이다. 올챙이 시절에는 수온이 따뜻해야 산다. 이때는 개구리밥이 싹이 나지 않을 때고, 개구리로 변태를 하고 나서 개구리밥은 싹이 돋고 증식을 하니 철이 맞아떨어진다. 

 

씨앗을 만드는 고등식물 중에서 가장 크기가 작은 것이 개구리밥이다. 뿌리와 잎, 줄기가 나 있는 것이 단순하다. 그러나 뒤집히지 않게끔  뿌리를 길게 늘어뜨린다.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질 않고 물결을 따라 움직일 뿐이다. 햇살이 뜨거우면 증식속도가 빠르다. 생명력과 번식력이 대단하다. 논에 퍼져 햇빛을 막아 물의 온도를 떨어뜨리고, 공기 중에 질소를 흡수하여 벼에 필요한 질소를 공급한다. 겨울이면 물밑으로 가라앉아 추위를 피한다. 개구리밥이 살아가는 전략이다.

 

유행가에서 부평초란 말을 자주 들어 익숙하다. 한수산이 쓴 소설 〈부초(浮草)〉는 부평초를 줄인 말로 떠돌이 서커스꾼 삶을 그렸다. 다산 정약용은 백성을 부평초라 하고 지배층의 횡포를 시로 남겼다. '온갖 풀이 모두 뿌리 있으니 부평초 홀로 뿌리가 없어 / 물 위에 두둥실 떠도는 신세 언제나 바람에 불려 다니네 / 살려는 의지가 없으리요만 더부살이 신세처럼 가냘프기만 하니 / 연(蓮) 잎이 너무도 업신여기고 마름은 줄기로 칭칭 감아 조이네 / 한 연못에서 같이 살아가면서도 왜 이다지도 몹시도 어긋나는가'. 부평초를 빌려 약한 백성을 약탈하는 관리들에 대한 비판과 핍박받는 백성들에 대한 연민의 정을 드러내었다.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품은 뜻을 펼치고자 고향을 떠나 타관 땅을 떠돌게 마련이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면 고생길이 시작이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은 제대로 안되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도 없다. 뜻대로 되는 일은 없고 고향을 그릴뿐이다. 참으로 우리네 인생이 부평초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고정희 시인은 〈상한 영혼을 위해〉란 시에서 '상한 갈대'를 '상한 영혼'으로 비유하고, 갈대보다 불안한 존재로 부평초를 얘기했다. 그러면서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 피거니'. '뿌리 깊은 벌판에 서라' 그러면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다'고 하였다. 살다 보면 물 들어오고 꽃 필 날이 있다.   

 

 

 

개구리밥 / 경북 봉화 닭실마을 (2019.6.24)

 

 

개구리밥 / 마현마을 (경기도 남양주. 2018.8.30)

 

 

개구리밥 (2019.10)

 

 

좀개구리밥 / 마현마을 (경기도 남양주. 2018.8.30)

 

 

좀개구리밥 / 선유도 (서울 영등포구. 2019.9.18)

 

 

개구리밥 / 전남 해남 (2016.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