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향 글향이 있는 산방

산을 걷고 길을 걸으며 세상을 배웁니다

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자연의 향기/자연의 말

백로(白露)가 지나면 기러기 날아와 가을을 전한다

향곡[鄕谷] 2024. 9. 14. 22:20

말속에 자연 27

 

백로(白露) 가 지나면 기러기 날아와 가을을 전한다

 

 

 

백로(白露)는 양력 9.8경으로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서 풀잎에 이슬이 보일 정도로 기온이 차가워진다. 새벽 산길을 걷다가 보면 풀잎에 송골송골 맺힌 이슬이 보인다. 대체로 백로를 깃점으로 가을이 시작된다. 백로는 벌초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추수를 앞두고 숨을 고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백로에서 추분 사이에 기러기가 날아오며, 제비는 남쪽으로 돌아간다. 이제야 더위에 혼쭐이 난 정신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다.. 

 

새들은 때가 되면 저 왔던 곳으로 움직인다. 기러기는 이동할 때 대오가 정연하다. 경험이 있는 기러기가 앞장서서 V자 대열로 날아간다.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다. 기러기들은 서로 힘을 합하고, 신의가 있으며, 방향감각이 있으며, 떠날 때와 머물 때를 구분할 줄 안다. 한번 짝을 이루면 끝까지 같이 하니 절개도 있다. 결혼식에 나무기러기를 쓰는 것은 기러기같이 백년해로하여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로 바라는 뜻이다. 

 

기러기는 높이 난다. 줄기러기는 에베레스트산 보다 높이  난다고 한다. 높이 날 수 있는 것은 체온 관리가 되고 날개를 움직여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기러기는 날며 소리를 내어 격려하고 자기의 위치를 알린다. 그렇게 날면서 앞 세대는 새로운 세대에게 가는 길을 가르쳐준다. 우리나라에서 기러기는 백로(白露)에 와서 우수(雨水)에 돌아간다. 가을에 오는 것은  겨울에 먹이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면, 봄에 떠나는 것은 새끼를 치기 위한 것이다. 

 

기러기가  있는 시나 노래는 애잔하다. 우리 가곡 〈이별의 노래〉에서는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라 하여 애달프고 외롭기가 가을하늘처럼 높다. 이순신이 지은 〈한산도 야음(夜吟)〉 시조에서는 '넓은 바다에 가을 햇볕 저무는데 / 추위에 놀란 기러기떼 하늘 높이 나는구나 / 가슴 가득한 근심에 잠 못 이룬 밤 / 새벽달은 활과 칼을 비추네'.  수심 깊은데 기러기가 있어 더욱 애달프다.   

 

기러기가 전하는 소식을 안서(雁書)라 한다. 백로에는 기러기가 가을소식을 전한다. 김포벌에서 기러기가 날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날갯짓이 요란하였다. 법정스님은 기러기 나는 소리를 '솨삭 쇄셋 솨삭 쇄셋 …'이라고 표현하였다. 풀이나 옷깃이 스치는 듯한 이 소리를 오밤중에 듣고,  마치 어떤 혼령이 허공을 지나가는 소리처럼 들려서 맑은 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영혼의 무게 같은 것을 헤아리게 되었다고 한다. 유난히 더운 여름 끝이라 기러기의 가을 안서(雁書)가 더욱 반갑다. 나뭇잎 떨어지거나 바람소리 나면 나도 문득 나 자신을 돌아봐야겠다.  

 

 

 

큰기러기 / 김포 장릉 앞 (2021.12.21)

 

 

큰기러기 / 김포 장릉 앞 (2021.12.21)

 

 

큰기러기 / 김포 장릉 앞 (2021.12.21)

 

 

큰기러기 / 김포 장릉 앞 (2021.12.21)

 

 

큰기러기 / 김포 장릉 앞 (2021.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