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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자연의 향기/자연의 말

못된 소나무가 솔방울만 많다 / 떠나야 할 때를 아는 나무

향곡[鄕谷] 2024. 10. 7. 18:34

말속에 자연 28

 

못된 소나무가 솔방울만 많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나무

 

 

나무 중에서 소나무만큼 우리와 인연이 있는 나무도 드물다.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에 엮는 솔가지 잎에서 시작하여 소나무 관속에 들어가 솔밭에 묻히니 말이다. 어릴 때 땔감을 마련하러 뒷산에 올라갔다. 주로 솔잎이나 참나무잎을 긁어서 담아 온다. 어떻게 늘 푸르다는 솔잎이 긁어와도 늘 쌓인다. 늦가을이 되면 참나무 잎은 그 해 봄에 난 것이 모두 떨어지는데, 솔잎은 올해 난 것과 지난해 난 것은 그대로 붙어 있고, 지지난 해 난 것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잎갈이를 하고도 남아 있는 것이 많기에 늘 푸르게 보인다. 

 

추석이 되어 송편을 만들 때면 솔잎을 따온다. 송편을 찔 때 밑에 깔기 위해서다. 솔향도 좋지만 항균력과 방부력이 뛰어나 송편이 상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상처가 나면 스스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송진을 내어 썩는 것을 방지하고 테르핀이라는 향기를 내뿜는데 이것이 사람에게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는 것이다. 소나무가 병원균, 해충,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내뿜는 화학물질 일체를 피톤치드라 한다.

 

피톤치드를 뿜어 사람은 유용하게 활용하는데, 다른 식물은 자라지 못하게 하는 타감작용을 한다. 소나무 뿌리와 낙엽도 다른 식물을 못 자라게 하는 물질을 분비한다. 다른 식물은 물론 숲에 유익한 작은 곤충과 미생물 번식도 힘들다. '소나무 근처에서는 퇴비도 만들지 말라'는 말처럼 소나무는 생명의 발길마저 끊는다. '거목 밑에 잔솔 못 자란다'는 속담은 소나무 뿌리가 애솔은 물론 다른 나무도 못 자라게 하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이 말은 '잘 나가는 아비 아래 좋은 자식 두기 어렵다'는 말과 비유가 같다. 

 

소나무는 암수 한 그루이다. 암꽃은 제일 꼭대기에 피고 수꽃은 그 아래에 붙어 노란 꽃가루를 만드는 송화(松花)이다. 가지 끄트머리 우듬지에 젖꼭지만 한 적자색 꽃이 그 해 봄에 열린 암꽃이다. 이듬해가 되면 풋 열매가 되며, 3년째에 바늘잎을 벌린 솔방울이 된다. 그렇게 자라던 소나무가 어느 해에 솔방울을 많이 달고 있다. 생육조건이 좋지 않아 죽음을 예견하여 솔방울을 많이 만든다. 그를 두고 '못된 소나무가 솔방울만 많다'라고 한다. 솔방울은 껍질이 축축하면 닫히고 마르면 열려서 씨가 틔어 나간다. 안팎이 다른 온도나 습도에 반응하는 특성을 '솔방울효과'라 하는데 그를 이용하여 기능성 옷을 만들었다.

 

소나무는 뿌리가 밖으로 나와 다 보일 정도로 건조한 토양이나 바위에서도 잘 산다. 늘 푸르고 꿋꿋하게 사는 그런 소나무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런 소나무에 참나무가 접근하여 공간을 넓히고 있다. 참나무는 소나무의 타감작용에 덜 민감하기에 점점 들어오고 동식물이 좋아하는 생활공간을 만든다. 그늘을 피해서 소나무는 햇볕이 많은 산 위에 터를 잡는다. 우리가 소나무만 보호하는데 치중하다가 숲은 다양성을 잃어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없어지고 해충이 급증하고 있다. 상록침엽수가 많아지면 물을 머금을 수원 함량이 적어져 산사태와 홍수에 방비가 안되고, 산불이 발생하면 휘발성이 커 방제도 어렵다. 한 종류만 키우는 숲은 건강한 숲이 되지 못한다. 식물도 동물도 더불어 사는 숲이 건강한 숲이다. 

 

  

 

소나무 / 오봉산 (2009.11.1). 생육 환경이 안 좋아 솔방울을 많이 달았다

 

 

소나무 / 운길산 (2016.12.9). 솔방울이 많다

 

 

소나무 (강원도 고성. 2012.6.3). 건강한 소나무는 솔방울도 적다

 

 

바위에서 사는 소나무 / 신선봉 (경기도 양평. 2014.7.1)

 

 

소나무 암꽃과 솔방울 / 북한산 (2024.5.23). 꼭대기에 암꽃이 보이고 아래에는 꽃 핀 이듬해에 열린 솔방울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