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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글곳간/세상 이야기

향교골 우리집 마당

향곡[鄕谷] 2005. 7. 20. 10:17

 

 

 

 

향교골 우리집 마당

 

 

  

 

 

 

 어제 저녁 식탁에 모처럼 푸짐한 나물이 올라왔다. 찐 호박잎,가지무침,풋고추,근대쌈,오이무침, 고추찐것에 된장국에 먹다보니 지금은 없어진 우리집 넉넉한 마당 텃밭이 생각났다. 동네에서 제일 큰 감나무와 측백나무가 우리집 표지였고, 깊은 큰우물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집을 감나무집,큰우물이 있는 집,교장선생님댁이라 불렀다.

 

앞뒤마당에 있던 감나무에 감꽃이 떨어질 때면 아이들이 실에 꿰어가느라 모여들었고, 여름철 어린애 주먹만한 풋감이 기왓장을 때려 가끔 밤잠을 깨웠던 그 감나무 아래 시원하게 자리를 펴고 숙제하던 시절엔 더위를 몰랐다. 그 시퍼런 감을 신문지에 널어 물렁해지면 우리 간식이었다. 가을엔 지붕에 올라가거나 사다리를 나무에 걸쳐 놓고 굵은 대나무막대기로 감을 따서 광주리에 담아 나르던 넉넉한 감나무였다. 호두나무를 추수할 때도 막대기를 휘두르면 별채 함석지붕이 요란해지고, 담밖에 기다리던 아이들이 호두를 한웅큼씩 챙겨가도 반가마니는 딸 수 있었다. 

 

멀리서도 볼 수 있는 그런 큰나무들도 있었지만 가까이 다가서서 측백나무 울타리로 집안을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았고, 설령 대문에 들어서더라도 빽빽한 정원때문에 춘양목으로 근사하게 지은 고옥이 쉬이 보이지 않던 집이었다. 포도나무와 수세미덩굴이 터널을 만들고, 여름이면 하루에 한잎이 생기는 파초며 해바라기가 떡 버틴 정원엔 봄에 화사하게 집안을 장식하였던 옥매화와 목련잎으로 꽉 메워버렸다. 장독대가 옥매화 그늘에 가린다고 수시로 가지치기 하여도 다른 화초와 나무들이 그 자리를 늘 차지했다.

 

뒤안 마루문을 열면 툇마루 너머 붉게 핀 능소화와 담쟁이덩굴이 올라가고, 호박이 주렁주렁 달릴때면 아카시아로 지주대를 받쳐 도와주었던 뒤안 풍경이었다. 여름에 아버지 술 거나하게 드시고 오셔서 돗자리 펴고 뒷마루문을 열어놓고 조실 때면 산 위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낡아빠진 선풍기는 장식으로 빙빙 돌아갈 뿐이었다. 가을이 되면 뒤안은 모과가 누렇고 사과와 대추,배도 익고, 앞마당엔 국화에 벌들이 잉잉거려 아름다운 정원이 되었다. 

 

꽃밭은 꽃밭대로 바쁜 터였다. 봄이면 동네사람들이 와서 꽃모종을 얻어가고, 여름이면  봉선화 물들인다고 모여들고, 오는사람 그냥 보내지 않고 고추,가지,배추 솎아 안겨주었던 어머니셨다. 손님이 오면 즉시 만들 음식거리가 넉넉했고, 어머니가 해주시는 적(=부침개)을 자주 먹었다. 앞뒤마당 채소밭 외에도 대문 입구에는 가마니에 고구마도 가꾸고 우물가엔 토란도 가꾸고,  어찌 그리 많이 키웠는지 지금 생각하니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러니 일거리가 많았다. 집에 수도가 채 안들어왔을 때는 매일 언덕 아래 공동수도로 물통을 들고 가서 두멍에 먹을 물을 가득 채우고 나서, 우물에서 물 길러 앞뒤마당 채소와 화초에 물주고 나면 고무신에 물이 북적북적 하였다. 오줌을 날라 감나무나 호박에도 부어주고…. 아침저녁 방마루 닦고 대문밖까지 쓰는 것도 우리 형제들 몫이었다. 가을엔 방마다 문종이 바르느라 입으로 물을 뿜어 창호지를 뜯어낸 뒤, 국화잎이나 맨드라미꽃을 따다 손잡이쪽 창호지에 바르고 볕에 말리던 일도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김장독과 무구덩이를 넓게 묻었고, 한창 때는 푸짐한 안식처였던 마당과 텃밭,꽃밭이 어른은 나이 드시고 자식들이 하나씩 장가가니 어른들에겐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집이 넓어 청소와 뒤치닥거리에 힘이 들기도 하고 나무도 병도 들어  베어내고, 세 준다고 채소밭에 아랫채 세우고,벽돌로 측백나무 담장을 대신하기도 하여, 그 많던 화초와 채소밭이 단촐해졌다. 그래도 찾아가면 뒤안에서 머우나물과 가지,고추를 챙겨 주시면 늘상 안스러웠다. 집에 향기 내라고 모과도 몇 개 따서 넣어 주었는데 차가 없던 때라 모두 짐이 되었지만 그 정성에 싫은 소리 않고 모두 들고 왔었다.

 

도로 개설로 집이 수용되어 뜯기게 되었을 때, 시문화원장께서 우리집이 너무 아깝다고 뜯어가 다시 지으려 했으나  예산이 없어 포기하였다.  이제는 아련한 옛일이 되었고, 집에 내려갈 때면 휑하니 빈 옛 집터를 둘러보며 가끔씩 옛날을 생각한다.

 

 

                                                            

 

앞,뒷마당에 있었던 것들

 

 

나무 : 감,측백,포도,호두,석류,은행,모과,대추,복숭아,배,단풍,탱자,전나무,고염,향,사철나무.모란

 

화초 : 능소화,박태기,국화,채송화,백일홍,라일락,장미,파초,옥매화,다알리아,백목련,백합,분꽃,영산홍,해바라기,작약,무궁화,나팔꽃,봉선화,맨드라미,뱀꽃,회양목,히야신스,수세미,사루비아,용설란,고목이 된 선인장

 

채소 : 호박,가지,배추,무,시금치,부추,고추,오이,토마토,도라지,우엉,머우,토란,깨,고구마,파. 피마자,박,옥수수,양대

 

(2005.7.20)

 

 

감나무가 있는 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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