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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곳간/세상 이야기

자취생 權兄

향곡[鄕谷] 2007. 12. 23. 17:21


자취생 權兄  

 

 

내가 학교 다닐 때 우리 집에는 자취생이 있었다. 교대 다니는 학생들이 자취생으로 들어왔다.  여러 사람들이 들어와서 졸업하여 나가고 또 들어오곤 하였다. 동짓날이 되니 우리 집에서 자취하던 분이 떠 올랐다. 

 

주위에서 권형으로 불렀고 스스로도 그렇게 불렀다. 그 당시에 나 보다 몇 년 연배 였으니 지금은 고참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마당에서 그 날 배운 음악이나 무용 등을 직접 복습하느라 우리 집 마당은 늘 구경거리가 많았다. 우리는 툇마루에 앉아 웃으면서 어른같은 학생들이 마당을 겅충겅충 뛰며 노래를 부르고 율동하는 모습에 같이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추었다. 그 형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자기 주장을 하였는데, 선생님이 되면 학생들에게 양치질 할 때 치솔을 못쓰게 하겠다고 했다. 치아가 여린 학생들에게 칫솔질을 하면 사기질이 망가져 오히려 해롭다는 주장이었다.  

 

권형은 집도 멀지만 어려워서 우리 집 된장이나 김치를 가끔 애용하였다. 반찬을 하면 어머니가 덜어서 나누어 먹었고 연탄불도 수시로 부쳐 주기도 하였다. 권형은 행동이 도인 같았고 글 재주가 좋았다. 여러 문학연이나 문학잡지 등에 기고 하여 원고료를 받아 생활비로 보태었다. 상장이 하도 많아서 상장을 연탄 불쏘시개로 쓰거나 밥상에 뜨거운 그릇을 받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권형이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에 오른 것을 나중에 신문에서 보았다. 재주 많은 분이 드디어 일을 내고 말았던 것이다. 며칠 전 아버지 제사에서 내 동생이 30여년 전 권형이 학생 때 쓴 시 '새댁'을 아직도 외우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한참 흘렀지만 이래저래 우리 식구들 머리에 남아있는 형이었다. . 

 

 

 

          새댁                       

                    權 石 昌

 

   즈믄날 시집살이 몰래 아린 손끝 모아   

   정화수 달이 지는 동짓달 긴 밤   

   달을 먹은 새댁은 배가 불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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