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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이 지은 '숨어사는 즐거움'

향곡[鄕谷] 2010. 3. 19. 23:50

 

 

허균이 지은 '숨어사는 즐거움'

 

 

허균이 지은 한정록(閑情錄)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엮은 책이 '숨어사는 즐거움'이다. 허균이 마흔두 살 때 옛사람의 글을 모아 지은 책이다. 훗날 세상을 벗어나 숲 속에서 속세를 떠난 선비와 만나 이 책을 읽으면 행복하겠다고 하였다. 십 년도 더 전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좀 무미하였는데, 다시 꺼내서 읽고 나니 가슴으로 더 다가왔다. 며칠 전 입적한 법정스님도 무척 좋아하신 책이었다. 

 

  

 

산 중에 무엇이 있느냐

 

양나라 도홍경이 벼슬에 뜻이 없어 산에 숨어들자, 고조가 찾아가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 물었다. 도홍경이 대답하기를 '고개 위에 흰 구름이 많지만 혼자만 즐길 수 있고 임금께 가져다 줄 순 없다' 하였다.

   

 

○ 청풍명월은 무진장

 

소동파는 적벽부에 이르기를 '강상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이여, 귀로 듣노니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니 빛이 되도다. 갖자 해도 금할 이 없고 쓰자 해도 다할 날 없으니 조물의 무진장이다' 하였다.

   

 

○ 쉬어야 하는 이유

 

당나라 사공도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정자를 짓고 이름을 삼의휴(三宜休)라 하였다. 첫째로 재능을 헤아려 보니 쉬어야 하고, 둘째로 분수를 헤아려 보니 쉬어야 하고, 셋째로 늙고 눈마저 어두우니 쉬어야 한다는 뜻이다.

   

 

○ 자손에게 주는 재물

 

어떤 사람이 소광에게 황금으로 자손에게 생업의 기본을 더 많이 장만하기를 권하자, 소광은 '늙은 몸으로 자손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지금 땅만으로도 부지런히 노력하면 의식을 얻을 수 있는데, 땅을 더 사주어 남아도는 재물이 있다면 자손들에게 게으름을 가르치는 것이 된다. 어질면서 재물이 많으면 자신의 뜻을 손상하게 되고 어리석으면서 재물이 많으면 자신의 허물을 더하게 되는 것'이라 하였다.

   

 

○ 재물은 짐

 

무릇 세상살이란 사람에게 있어 여관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날마다 물건을 사서 보탬으로써 재물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그 재물이 세상길 떠날 때 부담스러운 짐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선경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신비로운 골짜기나 오묘한 땅은 고상한 풍류를 지닌 사람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조물주가 몰래 보관해두고 보통 사람들에게 경솔히 보이려 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산신령이 꼭꼭 숨겨둔 채 그 선경을 영광스럽게 해 줄 사람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 바라는 것

 

숭산에 사는 반사정에게 고종이 불러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반사정이 대답하길, '신이 바라는 바는 무성한 소나무와 맑은 샘이 산중에서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 강산과 풍월의 주인

 

강산과 풍월은 본래 일정한 주인이 없고, 오직 한가한 사람이 바로 주인인 것이다.

   

 

○ 피곤하게 일을 시키는 뜻

 

명나라 유대하는 아들에게 글 읽기를 가르치고 비 내리는데도 밭 갈기를 재촉하면서 말하였다. '부지런함이 몸에 익으면 피로를 잊게 되나, 안일함이 몸에 젖으면 게으름뱅이가 되는 법이다.'

 

   

○ 화(禍)가 생기는 이유

 

양소윤이 말하길, 화는 모두 이욕에서 생기는 것이니, 이(利)를 구하지 않는다면 화가 어디로부터 생기겠느냐라고 하였다.

   

 

○ 말을 멈출 때

 

세력은 끝까지 의지하지 말고, 말은 끝까지 다 하지 말고, 복은 끝까지 다 향유하지 말라. 말은 뜻이 만족할 때 멈춰야 한다. 그렇게 해야 평생 과오가 적을 뿐 아니라 묘미가 무궁함을 깨닫게 된다. 

   

 

○ 적게 해야 하는 것

 

입 속에는 말이 적게, 마음속에는 일이 적게, 밥통 속에는 밥이 적게 하면 신선도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