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 자취를 찾아서 1
퇴계태실-퇴계종택-퇴계 묘소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토계리 (2010.6.13)
도산서원에서 나와 청량산 방향으로 3㎞를 가면 도산면사무소가 있는 온혜리가 나온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밭고랑 너머 보이는 고옥이 퇴계선생이 태어난 태실(胎室)이다. 퇴계의 할아버지인 노송정 이계양(老松亭 李繼陽)이 1454년에 지은 집이어서, 노송정 고택으로, 퇴계가 태어났다 하여 퇴계태실로 부르고 있다. 이계양이 봉화에서 훈도를 할 때 길에서 굶주림으로 쓰러진 스님을 구하였더니, 스님이 이 터를 잡아주면서 귀한 자손이 태어날 것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계양의 맏이인 이식(李埴)의 일곱째 아들이 퇴계이다.
대문 앞에 서면 퇴계의 수제자인 학봉 김성일이 쓴 성임문(聖臨門)이란 글씨가 보인다. 성인이 든 문이란 뜻이다. 노송정(老松亭) 편액이 있는 바깥채를 지나 왼쪽에 있는 안채로 들어서면 툭 튀어나온 방이 태실로 퇴계선생 태실(退溪先生胎室)이라 적혔다. 당시에는 일반 민가에 까지 온돌이 일반화되지 않을 때였는데 온돌방을 만들기 위해 한 칸을 별도로 내었다. 손자에 대한 퇴계 할아버지의 지극 정성이 있었던 곳이다.
퇴계태실에서 나와 퇴계종택으로 갔다. 집 앞에 퇴계선생 구택(退溪先生舊宅)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1927년 지은 집이지만 종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집이다. 작년 11월 부인상을 치를 때 짚을 엮었던 여막과 상례 순서와 참여자를 써 놓은 홀기를 그대로 종택 문간에 달아두었다. 사랑채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에서 16대 종손인 이근필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재작년보다 귀가 더 어두어지셨다. 집에서 수확한 매실차를 내오시고 15대 종손께서 100세 때 쓰신 수신십훈(修身十訓)을 내시며, 그 첫 훈(訓)을 설명하셨다. 입지(立志). 뜻을 세움에는 마땅히 성현을 목표로 하고 털끝만큼도 못났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當以 聖賢自期 不可存毫髮 退托之念)는 내용이다. 당신이 직접 쓰신 譽人造福 (예인 조복: 사람을 기리는 것은 복을 짓는 것이란 뜻)도 받고, 평소에 열지 않던 사랑채 큰 문을 열어 배웅하시어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퇴계종택에서 1.5㎞를 더 가서 왼쪽으로 경사가 가파른 돌계단으로 150m 올라가면 퇴계 묘소가 있다. 입구에는 양진암 구지(養眞庵舊止)라고 세운 돌이 있는데 퇴계가 46세 때 세우고 공부하던 터였다. 큰 소나무가 호위하는 산길을 오르면 문인석과 동자석이 서 있는 소박한 묘소가 있다. 비석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 쓰였다. 돌아가실 때 유언이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 하였듯, 산소도 소박하다.
성임문(聖臨門) / 노송정 고택
사랑채 노송정(老松亭)
온천정사 / 퇴계태실이 있는 바깥 건물
퇴계선생태실
퇴계종택 바깥채
퇴계종택 안채
퇴계종택
사랑채 추월한수정 / 秋月寒水=가을달처럼 맑고 찬 강물처럼 투철한 현인의 행동을 의미
수신십훈을 설명하시는 퇴계 종손 이근필 선생님
수신십훈
예인조복(譽人造福) 내용에 대한 설명
사랑채 대문을 열어 배웅하시고
퇴계선생 묘소 입구
퇴계선생 묘소
퇴계태실-종택-묘소 가는 길
'역사와 문화가 있는 풍경 > 안동 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육사 문학관을 찾아서 - 매화향 아득한 곳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 (0) | 2010.06.25 |
---|---|
퇴계 오솔길 '예던길' (0) | 2010.06.16 |
하회별신굿탈놀이 / 800년을 이어온 특별한 굿 (0) | 2009.06.20 |
병산서원과 부용대 / 하회마을 화산끝자락 풍광 (0) | 2009.06.18 |
안동 소산 마을 / 충효마을 안동김씨 집성촌 (0) | 2009.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