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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열전 1 / 한국미술사 대표화가 8인 인생역정

향곡[鄕谷] 2010. 7. 23. 23:23

 

 

화인열전 1  / 유홍준 지음  (역사비평사)

한국미술사 대표화가 8인 인생역정

연담 김명국 / 공재 윤두서 / 관아재 조영석 / 겸재 정선

 

 

 

내가 옛 그림에 재미를 느낀 것은 오주석이 쓴 '한국의 미 특강'을 읽고 나서부터다. 그 뒤 최완수의 '겸재의 한양진경'을 읽고 더 깊이 빠졌는데, 본격적으로 인간학으로서 미술학을 표방한 화인열전을 읽게 된 것은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 연담 김명국 (蓮潭 金明國 1600?~?)

   - 취흥에 그린 그림, 신필의 달마도

                                                                                     

 

 

연담 김명국 「달마도」

 

 

 

 사람들이 김명국은 몰라도 달마도는 잘 안다. 몇 가닥 굵은 선으로 호방한 필치로 쓱쓱 그어놓은 달마도는 모든 달마도 중 으뜸이다. 취중에 그림을 그린다 하여 취옹(醉翁)이란 별호도 있듯 자유분방하고 개성적이고 시대 순응적이 아니었기에  당대에 인정을 받지는 못하였다. 물론 자기 관리를 못한 탓도 있었다. 그래서 후원자도 없었다. 그러나 조선통신사 일원으로 간 일본에서는 환영을 받아 2번이나 다녀왔다는 것이다. 그는 장승업과 함께 조선의 신필(神筆)로 인정받았다.  신필이란 천재성과 기존의 격식을 뛰어넘는 기격(奇格)이 있어야 붙이는 칭호이다. 조선시대 미술평론가인 남태응이 말하길, 그의 성격 탓도 있지만 회화적 환경 탓이라 하였다. 이단이요 기인이지만 그래도 자기 화풍을 지켰기에 그는 남아있는 것이다.

 

 

 

 

연담 김명국 「비급전관도」 

 

 

 

 

□ 공재 윤두서 (共齋 尹斗緖 1668~1715)

   - 선비로 살아가는 선각자의 고독이 묻어나는 자화상

  

 

 

공재 윤두서 자화상

 

 

윤두서의 대표적 그림은 그의 자화상이다. 해남에 있는 해남 윤 씨 종택 녹우당에 그 그림이 있기에 갔었으나 마침 문을 닫아두어 보지 못하였다. 올(2010년) 7월에도 문을 닫는다 하니 그림을 볼라치면 잘 알아보고 갈 일이다. 그는 학자요 시서화에 능통한 대표적 선비화가였다. 고산 윤선도가 그의 증조부요, 지봉 이수광이 처증조부요, 다산 정약용은 외종손이요, 성호이익은 벗이다. 진사시험엔 합격하였으나 연속적인 초상으로 낙향 후 머물러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나 실학 중심에 있었다. 초상화 그림을 보면 선비로서 살아가는 의지와 자신의 뜻을 실현하지 못한 선각자의 고독이 묻어있다는 평이다. 그는 말(馬)과 인물화에 이름이 높았는데,말을 그릴 때 마구간 앞에 서서 종일토록 주목하여 보기를 몇 시간이나 계속하여 말의 모양과 움직임을 마음의 눈으로 꿰뚫어 보았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나 찢고 그렸다니 완벽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속화도 그려 조선후기 문인화와 속화에 끼친 영향이 컸다. 학문과 글씨가 뛰어났으나 그림에 덮였다. 글씨는 동국진체 창시자 중의 한 분이었다. 동국진체는 그의 친구인 옥동 이서와 자신 공재에 이어 백하 윤순을 거쳐 원교 이광사에서 완성을 보게 되었다.   

 

 

 

 

□ 관아재 조영석 (관아재 조영석 1686~1761)

   - 조선의 인물화는 관아재로부터 시작되었다

 

 

 

관아재 조영석 「조영복 초상」

 

 

 

관아재는 영조시대 인물화에 일인자인 선비화가이다. 조선의 인물화는 관아재 조영석에서 비롯하였는데, 사대부의 품위에 상처를 받기 싫어 그림을 의식적으로 기피하였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그림에 대한 흥취는 못이겨서 혼자 배우고 익혀서 자신을 발현한 화인이었다. 인왕산 자락에서 안동김씨 농암 형제와 겸재 정선과 어울려 학문을 배우고 그림을 그렸다. 형님을 위해 그린 '조영복 초상'은 인물화 최고의 화가로서 손색이 없었는데, 세조 어진 제작을 거부하고 숙종 어진을 직접 그리는 것을 거부하여 끝까지 붓을 잡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가진 욕망을 경계하여 관직에서도 청렴하였다. 그는 현실 속 인물을 그렸으며, 서민들의 삶을 애정 어린으로 보아 속화를 그렸고 격조를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관아재 조영석 「새참 」

 

 

 

 

 

□ 겸재 정선 (謙齋 鄭敾 1676~1759)

  - 조선의 산수화를 창시하고 완성한 화가 

 

 

 

겸재 정선 「 인곡유거도」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조선의 산수화는 겸재에서 출발하였다. 양반의 명예보다는 그림을 사랑하여 선비화가가 아닌 화원으로 오해를 받는다. 겸재의 진경산수는 스승 삼연 김창흡의 진경 시를 그림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림은 김창업에게서 배운 것으로 추정하며, 화법을 익히는 결정적 역할은 같은 문하생 이병연이다. 진경시대란 숙종에서 정조시대에 이르는 시기로 간송미술관 최완수 연구실장이 붙인붙인 이름인데, 숙종 년간 이후 청나라를 의식하지 않고 조선이 문화의 중심이라는 민족 자부심이 문화적 발흥으로 일어난 것이다. 진경산수의 묘미란 실경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회화미로 재해석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겸재는 84세까지 사는 동안 무수하게 그림 주문을 받았어도 거절하지 않았고, 나이가 들수록 필치는 원숙하였다. 청풍계도와 인곡유거도도 겸재의 대표작이나, 3대 명작은 인왕제색도, 박연폭포, 금강전도를 꼽는다. 저자가 말하길 한국미술사상 위대한 작가는 겸재 이전엔 없었고, 겸재 이후에도 그와 짝할 이가 있다면 오직 단원 김홍도가 있을 뿐이라 하였다. 겸재는 회화의 거장이다.

 

  

 

 겸재 정선 「박연폭포」

 

 

 

 

 겸재 정선 「금강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