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이야기
내가 닭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나서다.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학교가 없어지는 바람에 어린이저금을 모두 받아 중닭을 스무 마리나 샀다. 닭장 아래쪽에는 산짐승이 못들어 오게 판자로 막고 위쪽은 마름모꼴로 된 철망을 둘러쳤다. 그 안에 닭우리는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지붕이 있는 송판집을 높게 지어 횃대에는 스무마리가 한꺼번에 올라설 수 있고, 닭둥우리도 짚으로 두어 개 만들고 북더기도 깔아 횃대 한쪽에 걸어 놓으니 닭집 치고는 제법 잘 지어 놓은 편이다. 학교 갔다오면 터밭에 남은 푸성귀를 넣어주거나 산에서 아카시잎을 뜯어 넣고 벌레를 잡아 넣기도 하였다. 닭은 울어 새벽을 알리고, 알 낳았다고 울어 가보면 따스한 온기가 달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닭이 알을 품고 있을 때면 끼니도 거르고 꼼짝도 않고, 알에서 깬 병아리를 데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기하였다.
하루 묵어 갈 손님이 오시거나 식구 생일이 되면 닭은 수난이었다. 닭 잡는 것은 어른들 몫이었지만 고학년이 되었을 때 나보고 닭을 잡으라 하였다. 정말 못할 짓이었다. 모가지가 없어진 닭이 온 집안을 돌아다니느라 오히려 내가 혼비백산 도망을 다녔다. 그 뒤 닭 먹는 일은 한참 동안 싫었다. 나중에 큰집에 갔을 때, 친척들이 큰집 닭서리를 할 때도 나는 닭을 건드리기 싫었고, 먹는 것도 꺼렸다. 그 때 큰집어머니는 씨암탉을 잡았다고 물어내라고 난리를 하는 바람에 닭서리를 한 사람들이 닭값을 물어주었는지는 어렸을 때라 잘 모르겠다.
전통 결혼의식에 보면 전안례라 하여 신랑이 처가에 도착하여 기러기를 드리는 의식이 있다. 신부는 박제한 꿩을 받들어 올렸다. 기러기는 한번 짝을 찾으면 다른 짝을 찾지 않는 신의가 있고, 꿩은 하늘닭이라 하여 천신(天神)의 사자(使者)인 셈이다. 당초에 쓰던 산 기러기는 나무기러기로 바뀌고 , 다시 살아있는 닭으로 바뀌었는데, 꿩이 귀하니 닭으로 바뀐 것이다. '꿩 대신 닭' 이란 속담은 여기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옛 사람은 닭이 오덕을 갖추어 기를만하다 하였다. 머리에 관을 쓰고, 발에 발톱이 있고, 적을 보면 싸우고, 먹을 것을 보면 서로 부르고, 어김없이 때를 맞추었다고 해서 문(文) 무(武) 용(勇) 인(仁) 신(信) 5덕을 갖추었다고 했다. 옛그림에도 잘닭은 대길(大吉)이요, 어미닭이 병아리를 기르는 그림은 아이를 훌륭히 키우는 오덕(五德)에 견주었다. 그것을 떠나서 집에 여유 공간이 있어 닭을 기를 수가 있다면 경제적인 도움도 있겠지만 배움의 가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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