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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곳간/세상 이야기

소설가 박완서와 아버지

향곡[鄕谷] 2011. 4. 13. 19:26

 

 

소설가 박완서와 아버지

 

 

 

 

 

 

맛깔스러운 소설을 쓰는 박완서 선생님이 올해 초 돌아가셨다. 선생님의 이력과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어보면 아버지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동 시대를 살아간 분들이 그러한 경험을 하신 분이 꽤 있었겠지만, 나의 입장에 견주어 그렇다는 것이다. 6.25 전쟁이 나던 해인 1950년 박완서선생님은 서울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셨고, 아버지도 그 해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 입학하여 전쟁으로 두 분 모두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다.

 

전쟁은 모두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일이다. 피난을 가거나 피난을 가지 않거나 가혹한 시기였다. 박선생님 같이 서울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겐 암흑과 이별, 몇 달 사이로 피아가 바뀌는 치하에서 지내기란 참으로 두렵고 고통스런 일이었다. 아버지도 피난을 떠났다가 한강 다리가 끊어지는 바람에 하숙집으로 돌아와, 근처 창경궁 안 금천교 다리 밑에서 3일을 숨었다가 3주 동안 밤에만 걸어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그 뒤 문관으로 전쟁터를 다니며, 영월 비행기재 부근에서는 적에게 쫓겨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셨다.

 

 박선생님은 불혹 나이에 문단에 들어서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얘기를 끌어내고, 실타래처럼 술술 풀어내었다. 모두가 쌓인 경험이고 그분이 가지고 있는 신선하고 감칠맛 나는 재주였다. 명성은 완전히 다르지만, 아버지는 사범학교 학력이 있었기에 시골에서 교편을 잡고, 아버지의 문학적인 흥취를 아동문예에 쏟았다. 지금도 내 서재엔 근무했던 지역과 학교마다 발간한 문예집이 꽂혀 있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학업을 마치지 못한 일을 늘 말씀하셨지만, 문집을 만들면서 못다한 아쉬움을 달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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