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은 늘 굽어보는 맛이 좋다
한라산 (1950m) 6
제주 (2016.9.14. 흐린 후 때때로 비)
성판악-진달래밭 대피소-백록담-진달래밭 대피소-성판악 (19.2㎞. 11시간)
가족들과 한라산 산행을 하였다. 오래 전의 아름다운 등반 기억을 되살려 한라산에 가자는 제안을 따랐다. 하늘은 옅은 구름이 덮여 은빛이다. 한여름이 막 지나간 기온은 적당하다. 사람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한데, 체내 열 생산과 외부 기온의 차이에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온도가 체온보다 10도 낮은 26도 정도라는데, 지금의 낮 기온이 그렇다. 숲의 공기는 청정하고 고소하다. 맑은 공기를 여과하고, 열매를 익혀 공기에 실어서 내보내는 모양이다. 나무는 맑은 공기와 향긋한 내음과 초록빛을 내보내어 산에 오르는 이들을 청정하게 한다. 바닥 길은 현무암 돌길이다. 가볍지만 단단하며, 순한 듯 날카롭다.
산행의 3분의 2 지점인 진달래밭대피소를 지나, 1700 고지를 오르면 고사목이 보이고, 그곳에서 더 오르면 서귀포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섶섬, 문섬, 범섬이 눈앞에 가지런하다. 추위, 강한 바람, 불안정한 토양층, 지나치게 많거나 적은 수분을 고산지역 식물의 4대 적이라 하는데, 쓰러진 고사목들이 많아졌다. 나무에도 생노병사가 있다. 나무는 부실한 토양에 자신을 묶어두기 위해 많은 양의 에너지를 뿌리에 투자하는데 그것도 허사가 되었다. 엉겅퀴가 지천이다. 이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 분투의 노력이 가상하다.
한라산은 늘 굽어보는 맛이 좋다. 구름 사이로 산 밑을 내려보면 힘들게 올라오던 일을 모두 잊게 한다. 백록담은 늘 그렇듯 물이 없다. 누가 바닥까지 내려가서 하트를 그려 놓았다. 사랑을 표시하는 데엔 이렇듯 적극적인 데가 있다. 관음사로 가는 길은 낙석이 있어 하산 길을 막아 놓았다. 내려오다가 식구 둘이 넘어져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다. 비가 내려 미끌해진 탓도 있지만, 다리에 힘이 빠지고 긴장이 조금 풀린 탓일 것이다.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천천히 내려와 성판악으로 돌아오니 어둑해졌다. 차를 부려 서귀포항으로 가서 뒤풀이를 하였다. 즐거운 경험담을 얘기하다가 넘어진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 버렸다.
※ 산행정보
1. 산행시간(하절기 기준)
(성판악) 05:30 이후 등반 가능 (진달래밭대피소) 12:30 이전 통과해야 정상에 갈 수 있음 (정상) 14:00 이전 하산해야 함
2. 샘터 : 성판악 샘터 음용수 부적합, 중간에 샘터 없음
3. 산행로 : 정상에서 관음사 가는 길은 낙석이 있어 당분간 입산을 통제하고 있음
4. 진달래밭대피소 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 : 컵라면, 초코파이, 커피, 비닐 비옷, 장갑 등
5. 화장실 있는 곳 : 성판악, 속밭대피소, 진달래밭대피소
진달래밭 대피소
마가목
구상나무 고사목. 1700 고지를 지나면 고사목들이 많다
1800 고지에 다가서면 정상이 보인다
1700 고지를 넘어서면 엉겅퀴가 많다. 엉겅퀴를 찾아온 박가시
서귀포와 섶섬, 문섬, 범섬이 보인다
늘 그렇듯 백록담에는 물이 없다
한라산 하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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