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 허목이 쓴 글씨, 조수를 물리치는 영험한 비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 강원도 삼척시 정라동 (2016.9.28)
삼척은 동해와 태백에 이리저리 땅덩어리를 떼어 주고도 큰 땅이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가 있고,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쓴 천은사가 있고,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의 조상묘인 준경묘와 영경묘가 있고,
고려의 마지막 왕릉인 공양왕릉이 있고, 미수 허목이 쓴 척주동해비가 있고, 너와집,해신당,환선굴과
여러 해수욕장 등 며칠을 잡아야 두루 다닐 수 있는 역사적 탐방처와 민속 답사지가 많다.
동해시에서 7번국도를 타고 삼척으로 들어와서 삼척항으로 가다가 보면, 오른쪽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이 육향산이다. 산이라기 보다는 작은 언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육향산 위에 척주동해비가 있다.
비는 본래 정라항(삼척항의 옛이름)의 만리도에 1661년 미수 허목이 쓰고 세웠는데, 풍랑이 심하여
마멸이 되자 1708년 다시 새겨 육향산으로 옮겨온 것이다.
남인의 영수 미수 허목은 서인의 영수인 우암 송시열과 복상문제로 예송논쟁을 벌여 이곳 삼척부사로
좌천되었다. 허목이 동해를 예찬하는 노래를 지어 척주동해비를 세웠더니 바닷물은 잠잠해지고, 그 뒤
로는 바닷물이 이 비를 넘지 못했다는 얘기다. 척주(陟州)는 삼척(三陟)의 옛 이름이다. 허목은 비석을
만든 후 앞으로 오는 큰 해일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며,해일이 오면 솥을 들고 삼척을 떠나 두타산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허목의 이 말은 어린 동자까지 다 알고 있어 그 후 '삼척동자도 다 안다'는 말이 생겼
다고 전한다. 신묘하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하도 탁본을 많이 해가는 바람에 비각을 세워 이제는 탁본은
물론 보기도 어려워졌다.
부근에 대한평수토찬비(大韓平水土贊碑)도 미수 허목이 중국 형산 우제의 비석 중에서 골라 나무판에
새겨두었다가 조선 고종 때 새긴 비석이다. 치산치수로 중물(衆物)을 제압한다는 것으로 척주동해비와
같은 의미다. 역시 비각 안에 있어 자세한 내용은 볼 수가 없다. 육향산 올라가는 계단 비로 위에는
이곳에서 관찰사를 지낸 홍상국에 대한 선정비가 서 있는데, 선정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비석 위의
그림이 재미있다. 마치 옛날 상형문자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표현의 내용은 둘째치고 바위에
새긴 파도처럼 일렁이는 곡선이 좀 서툴고 투박한 듯 보이지만 무슨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눈길이 간다.
척주동해비 / 미수 허목의 글씨다
[자료]척주동해비 뒷면
척주동해비 비각
육향정(六香亭) / 1948년 세운 정자로 현판 글씨는 애국지사 위창 오세창의 글씨이다
대한평수토찬비(大韓平水土贊碑) / 우전각(禹篆閣) 현판 휘호는 독립투사 이청천(李靑川)장군의 글씨다
삼척포진은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세운 것이 시초인데, 성곽은 삼척항을 축조하며 없어지고 이곳에 표석을 세웠다
관찰사 홍상국에 대한 선정비
비석머리 그림모양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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