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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좋겠다, 마량에 가면'의 그 마량

향곡[鄕谷] 2020. 1. 18. 13:12

 

 

2020 강진, 장흥, 해남 탐방 ⑥

 

마량에 가서

이재무의 시 '좋겠다, 마량에 가면'의 그 마량

 

전남 강진군 마량면 (2020.1.12)

 

 

마량포구 / 전남 강진군 마량면

 

 

 

 

'좋겠다, 마량에 가면'이란 이재무의 시가 있다. '몰래 숨겨 놓은 애인 데불고 / 소문조차 아득한 포구에 가서 / 한 석 달 소꿉장난 같은 살림이나 살다 왔으며' 하는 글로 시작한다. 누구는 이 글을 로망이라 말하고, 누구는 아주 가지 않으니 다행이라 그런다. 로망을 가지고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현실이 글에 녹아 있다. 다음 구절은 '한나절만 돌아도 동네 안팎 / 구구절절 훤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 / 마량에 가서 빈둥빈둥 세월의 봉놋방에 누워'로 이어진다. 강진까지 갔으니, 마량이 궁금하여 마량에 갔다.

 

마량은 강진의 끄트머리로, 바다로 치면 강진만 입구에 있다. 조선 태종 때 수군만호진을 설치하여 번창했고, 진이 없어진 후에도 어촌과 주변 해상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수군진이 있을 때 제주도, 노화도, 완도 등 주변 섬에서 기른 말을 이곳에서 받아 한양으로 올렸는데, 배에서 내린 말에게 먹이도 주고 일정기간 적응을 시켰다. 그래서 말이 머문 곳이라 마량(馬良)이란 이름을 얻었다.

 

고려청자 가마터가 있는 강진 대구면에서 이곳까지 오는 23번 국도는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곳곳에 도요지가 있고, 벚나무 가로수가 우거지고, 가우도가 있고, 마량 앞에는 후박나무를 비롯한 상록수림이 우거진 까막섬이 바로 앞에 있고, 새로 놓인 다리 너머로는 고금도이고, 그 너머가 신지도와 완도이다.

 

해는 저물어가고 바다 바람이 차다. 지는 해를 감상하기에는 바람이 너무 세다. 다시 되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주변 어시장 상인들도 문을 닫고,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량에는 소꿉장난처럼 살 애인도 빈둥빈둥 누워 지낼 세월의 봉놋방도 없으니, 저녁에 일용할 먹을거리를 이곳저곳에서 구해 차를 돌렸다. 해는 강진만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오늘도 길에서 씩씩한 하루를 보냈다.  

 

 

 

 

 

 

 

 

 

좋겠다, 마량에 가면

                                     이 재 무

 

몰래 숨겨놓은 애인 데불고

소문조차 아득한 표구에 가서

한 석 달 소꿉장난 같은 살림이나 살다 왔으면,

한나절만 돌아도 동네 안팎

구구절절 훤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

마량에 가서 빈둥빈둥 세월의 봉놋방에나 누워

발가락 장단에 철 지난 유행가나 부르며

사투리가 구수한, 갯벌 같은 여자와

옆구리 간지럼이나 실컷 태우다 왔으면,

사람들의 눈총이야 내 알 바 아니고

조석으로 부두에 나가

낚싯대는 시늉으로나 던져두고

옥빛 바다에 시든 배추 같은 삶을 절이고

절이다가 그것도 그만 신물이 나면

통통배 얻어 타고 휭, 먼바다 돌고 왔으면,

감쪽같이 비밀 주머니 하나 꿰차고 와서

시치미 뚝 떼고 앉아

남은 뜻도 모르고 웃음 실실 흘리며

알량한 여생 거덜 냈으면,

           

        시집 〈 저녁 6시 〉(창비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