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五臺山. 1563m)
오대천 돌아가면 맑고도 깊은 산골
상원사-중대사-적멸보궁-비로봉(1563)-상왕봉(1491)-상왕봉 삼거리-임도-상원탐방지원센터
이동거리 11.5㎞. 이동시간 4:32. 휴식시간 2:40. 계 7:12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2021.10.12 (대체로 흐림. 기온 5~7℃)
오대산은 신라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수도하며 돌아와 신라불교를 일으킨 곳이다. 산악숭배 사상이 불교에 녹아든 산이다. 오대산은 다섯 곳의 대(臺)인 동대, 남대, 서대, 북대, 중대가 있어 오대(五臺)인데, 대(臺)는 봉우리가 아니라 적멸보궁처럼 불단을 차릴만한 적당한 위치의 대지를 이른다. 모든 대(臺)는 봉우리를 뒤에 두고 있다. 동대사, 서대사, 북대사는 그 뒤에 각기 동대산, 효령봉, 상왕봉을 등에 지고 있고, 비로봉 아래 중대에는 적멸보궁이 있다.
오대산 가는 방법은 철도로 진부까지 갈 수 있어서 이동 수단이 늘었다. 진부역에서 택시로 상원사 위쪽까지 올라갔다. 올 때마다 늘 신비에 잠긴 산이다. 오대천 내려오는 물길이 시원하다. 오대천 상류가 남한강 최상류 발원지로 우통수(于筒水)라 하였다. 동피골 위쪽인 염불암 부근이 그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실측지도에 의해 편찬한 '조선지지'와 인공위성 측정 결과 우통수 보다 금대봉 기슭 검룡소 물줄기가 32㎞ 길다고 1987년 국립지리원이 공식 인정하였다. 오대천 물줄기가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긴 물줄기인 것은 변함이 없다. 사회 초년 시절 직장선배와 이곳 산에 기도를 하러 온 적이 있었다.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밤늦게 도착하여 산길을 걸었었다. 계곡물은 달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오대천 돌아가면 맑고도 깊은 산골
대가람 물골물아 선문답을 하려느냐
산냄새 풋풋한 달빛일랑 말이다
올해는 가을비가 많아선지 단풍이 많이 들지는 않았고 단풍도 수수하다. 길 초입에 애기물봉선과 산앵도나무와 참회나무 열매가 눈길을 끈다. 다람쥐는 무얼 숨겨놓았는지 사람이 있어도 낙엽 속에 머리를 묻고서 정신이 없다. 산 오르는 사람들이 귀여워하는 걸 다 아는 모양이다. 용안수가 길 중간에 있다. 오대천 우통수 물이 한강까지 흐르도록 빛이 변하지 않고 물이 무거워 궁중에서 탕약의 약수나 차를 달일 때는 한강 가운데 물인 강심수(江心水)로 썼다. 그 물과 같이 오대천 줄기를 이루는 물이라 한 모금 마셨다. 물맛이 달고 좋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에서 참배를 하였다. 그때 선배와 이곳 적멸보궁에서 새벽기도를 하고 나올 때, 아침 햇살에 비치어 풀밭에서 반짝이던 이슬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빛나는 추억이다.
적멸보궁을 지나면 본격 산길이다. 산길은 험하지 않지만 그래도 오름이다. 산 분위기도 바뀌었다. 나무들은 제각기 가을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여름에 꽃을 달고 있었던 송이풀, 세잎종덩굴, 박새는 그것을 열매로 변신시켜 놓았다. 세월을 그냥 보내는 식물은 없다. 그러니 산은 늘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 수풀은 여름보다 거칠어졌지만 여전히 푸근하다. 정상 비로봉은 구름이 사방을 막았고 바람이 분다. 비로봉은 비로자나불에서 유래하였다. 석가모니는 일시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취하여 이 세상에 온 것으로, 먼 과거로부터 인간을 교화해온 부처가 법신불 곧 비로자나불이다. 비로봉에서 호령봉으로 내려간 산줄기는 계방산 운두령을 지나는 한강기맥으로 길게 용문산을 지나 두물머리까지 가는데, 구름으로 사방을 가둬놓았다.
비로봉에서 두로령으로 방향을 틀었다. 능선에 나뭇잎은 대부분 떨어졌고, 구름으로 덮인 산길은 고목이 있어 더 아름답다. 나무는 주목, 피나무, 신갈나무, 거제수나무가 고목의 주종이다. 마가목은 열매로 산길을 수놓고, 여름에 한창 보았던 인가목, 참조 팝 나무, 터리풀은 찾아볼 수가 없다. 코끼리 머리에 해당하는 상왕봉에 오르니 구름이 살짝 걷혀 설악산 쪽 울긋불긋한 산줄기를 조금 내놓는다. 지나온 비로봉 산정은 아직 구름을 이고 있다. 두로령 가는 길을 젖혀두고 북대사 방향으로 내려섰다.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두로봉에서 오대산 봉우리들이 나눠지고 흩어지니, 두로는 두루요, 두루 감싸고 두루 모으는 산이다. 산길을 더 내려서면 임도이다. 홍천 내면에서 두로령을 거쳐 상원탐방지원센터까지 12㎞가 넘는 이 길은 봄에는 나비가 지천이다. 동대산이 있는 백두대간 능선은 구름이 걷혀서 노인봉 너머 소황병산 가는 능선까지 보인다. 임도길은 거제수나무가 도열하여 우리를 배웅하였다. 실비가 흩날리는 길을 내려오니 날이 어둑하다. 깊은 산중에 들어와 또 다른 나무와 풀을 만났다. 자연과 만나서 얘기를 나눌 수 있으니 늘 고맙고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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