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 눈꽃 대신 구름과 얼음계곡
(2022.1.25) 효자동 삼거리-서암문-원효암-원효봉-북문-효자비 (4시간 15분)
(2022.1.26) 구파발역-진관근린공원-삼천사-부왕동암문-중성문-효자동 삼거리 (10.7㎞. 5시간 47분)
눈 오면 산으로 가서 눈 밟으려 하였더니 눈은 다 녹아 버렸다. 원효봉(505m)은 절벽 같은 바위로 이루어져 눈이 쌓이지 않더라도 바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효자리에서 오르면 첫 문인 서암문은 삼백여 년 전 북한산성을 축조할 때 만든 8개 암문 중 하나로 홍예문 조각이 묵직하고도 아름답다. 그 암문에서 오르막을 오르고 나면 한참 오른 느낌을 받는 곳이다. 물푸레나무, 노간주나무, 가죽나무, 노박덩굴이 겨울눈과 열매를 매달고 있다. 원효암을 지나 성곽이 있는 곳을 이어 오르면 이내 원효봉이다.
원효봉은 북한산 산봉을 보는 조망처로 둘째 가기가 서럽다. 구름이 넘실거린다. 동양의 산수화는 원근법으로 화면을 구성하여 그것을 감상하는 방법이 있다. 산 아래서 봉우리를 올려보는 고원(高遠), 산 아래서 뒤를 살피는 심원(深遠), 가까운 산에서 먼 산을 보는 평원(平遠)이 있어 그 셋을 모두 볼 수 있는 이곳은 북한산 산봉을 입체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조망처로 좋다.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고 나니 구름이 어느 정도 걷혀 환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사람(人)이 산(山)에 들면 신선(仙)이 된다더니 그런 느낌이다. 그 풍경 속에서 동행한 시인 선생님이 시 한 편을 읽었다. 풍경을 담고 시로 기억하고 내려섰다.
다음 날 아침 또 길을 나섰다. 구파발역부터 걸어 진관근린공원을 지나갔다. '궁녀의 길'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궁녀들 무덤이 많아 그렇게 붙였다. 왕족의 생활을 거들던 궁중의 여인들이 많았다. 길에는 궁녀 외에 판서, 장군 무덤도 있고, 비석 글씨가 마모된 무덤도 있고, 나무가 들어선 무덤도 있다. 알 수 없는 깊은 사연을 안고 묻힌 삶들이다. 근린공원을 지나 삼천사골로 들어섰다. 한 때 3천여 승려들이 이곳에 있어서 절 이름이 유래되었다는데,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할 때(조선 성종 12년) 인원이 그랬다니 그때 승려가 가장 많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종은 척불(斥佛)에 적극적인 왕이라 사찰을 헐고, 도첩제를 정지하여 승려되기를 막고, 불교를 믿어 재앙을 막자는 유생은 귀양을 보낸 왕이었으니 말이다.
삼천사골 들머리는 다가서는 거리가 길어 산에 오는 사람들이 적다. 계곡에는 시원하게 뻗은 얼음계곡이 이어졌다. 부왕동암문 오르는 길은 가슴이 헐떡이도록 숨 가쁜 길이다. 산 오르는 것은 때로는 이렇게 힘들어야 산 오르는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조잘조잘 새소리, 들꽃의 속삭임도 없다. 겨울 노래 솔바람 소리도 없다. 햇볕이 넓은 바위 위에 비칠 뿐 깊은 휴식을 즐기는 산이다. 문수봉 봉우리가 갑자기 높게 보인다. 암봉은 북한산의 꽃이다. 봉우리의 위용을 보면 산에 오른 충족감을 느낀다. 부왕동암문을 지나 계곡으로 내려서면 온통 단풍나무 군락이고, 얼음골이다. 해가 없는 겨울 계곡은 차다. 암문은 안과 밖을 나누고, 따스함과 찬 것을 가르는 문이었다. 가름은 나누는 것이기도 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노적봉이 햇볕을 받아 밝고, 계곡은 얼음이 가득하여 밝다. 얼음계곡은 산 오는 사람에게 베푸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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