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 (812m)
이제는 꽃을 보러 가는 산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버스종점 - 청소년수련원 - 돌핀샘 - 정상 - 꺽정바위 - 청소년수련원 - 호평동 버스종점
이동거리 7.4㎞. 이동시간 4:02. 휴식시간 2:01. 계 6:03 (2024.4.8. 맑음)
서울을 중심으로 산 지맥을 보면 한북정맥에서 갈라지며 북한산과 도봉산이 자리 잡은 도봉지맥이 있고, 그 오른쪽에 수락산과 불암산을 차린 수락지맥이 있다. 서울을 둘러싼 두 지맥에서 한 발 벗어나면 수원산과 운악산 사이에서 천마산으로 내려오며 운길산과 예봉산으로 갈라지는 것이 천마지맥이다. 예전에 교통이 불편하던 때에 서울서 천마산에 가려면 버스를 오래 타고 가야 했다. 물이 적고 후미진 산이었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만 하여도 천마산(天馬山)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연마할 마(摩)를 써서 천마산(天摩山)이 되었다. 높고 신령스러운 산이라 바꾼 모양이다.
산행을 시작한 초기에 선배들과 천마산에 갔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길을 헤맨 다른 일행과 어둑할 때 내려와서 청량리까지 같이 나와 저녁을 먹고 헤어진 기억이 있다. 천마산 남쪽은 경사가 제법 급하고 동쪽은 순하다. 그래서 낙엽이 질 때 그 능선으로 잘못 접어들었다가는 길을 놓치기 쉽다. 다른 방향으로는 갈래가 많지만 표지판만 따라가면 길 잃을 염려는 적다. 봄철에는 천마산 돌핀샘 아래 계곡은 들꽃 화원을 차린다. 요즈음엔 들꽃 구경을 하러 가는 일이 많다.
호평동길 산길에는 들꽃이 줄을 섰다. 점현호색과 천마괭이눈(금괭이눈)은 이곳의 특징이요, 산괴불주머니도 피었고 제비꽃도 여러 종류가 있다. 꿩의바람꽃과 만주바람꽃도 보이기 시작한다. 중턱을 넘어서면 '바람난 여인'이란 꽃말을 가진 얼레지와 앙증맞은 노루귀로 눈을 떼기 어렵다. 아직 피나물이 필 때는 되지 않았다. 돌핀샘 부근은 처녀치마와 꼬리고사리가 개체수는 줄었지만 여전하다. 정상 하산 지점에는 유난히 진한 노랑제비꽃이 수북하다. 진달래 꽃은 중턱까지만 올라왔다. 들꽃들은 어찌 세월의 시간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지, 그들의 시간과 기억은 변함이 없다. 하산길에 가막딱따구리를 보았다. 천연기념물이자 보호종이다. 오래된 나무에서만 산다는데, 자연림이 점점 없어지며 보기 힘든 새이다. 세모모양 부리로 힘차게 나무를 쫀다. 산이 울릴 정도로 요란하여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데 아랑곳없다. 한참을 쳐다보느라 하산할 생각을 잊었다.
천마산 하산길에 꺽정바위가 있다. 커다란 바위가 묵직하게 서로 기대고 있고, 계단 위로는 전망대가 있다. 마치고개를 주무대로 활동하던 임꺽정(林巨正)이 활동하던 곳이라 한다. 불곡산 산자락 양주 청석골에서 태어난 임꺽정은 유기장으로 그릇을 만드는 백정이었다. 조선 명종 때 도적으로(1559~1562) 활동하였다. 백성을 부린 권세가들은 간척사업을 하여 소유권을 다 차지하고, 소득의 반은 양반들 몫이고, 백성들 먹을 것보다 세(稅)로 거두는 몫이 더 많았다. 살길을 잃은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되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백성들이 도적이 되었다. 명종실록에는 '도둑이 생겨남은 가렴주구 탓이요, 가뭄과 추위에 절박하여 목숨을 잇고자 도적이 되었으니, 정치의 잘못이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기록하였다. 실제로 큰 도둑은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한 정치가들이요, 백성을 도적으로 내몬 것은 양반들이었다. 정치를 잘못한 시기는 언제나 백성이 힘들었다.
'산 넘고 산 > 경기 인천 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한산성 한 바퀴 / 꽃 핀 봄날 산길은 향긋하다 (0) | 2024.04.30 |
---|---|
남한산성에 온 봄 / 기지개를 켜고 나온 봄의 풍경 (0) | 2024.04.13 |
남한산성에서 봉암성으로 / 산에서 봄은 발걸음이 늦다 (0) | 2024.04.02 |
불기산 / 원시 산경 거친 산림 그대로 (0) | 2024.03.16 |
칠봉산 천보산 / 양주 회암사터로 이어 간 산줄기 (0) | 2024.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