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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자연의 향기/자연의 말

숙맥(菽麥) /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향곡[鄕谷] 2024. 7. 17. 14:02

 

말속에 자연 1

 

숙맥 (菽麥)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식생 공부를 하면 자연과 관련 있는 속담, 고사성어, 관용어구가 가끔 나온다. 그래서 옛말에 있는 자연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것을 잘 아는 것도 아닌 내가 이것을 정리한다는 것이 어쭙잖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동식물을 만나서는 구분에 어려움을 겪던 내가 아니던가. 옛말에 콩(菽. 숙)과 보리(麥. 맥)도 구분 못하는 무식한 사람을 숙맥(菽麥)이라 했다. '콩을 보고 팥이라 그런다'는 말과 같다. 숙맥은 사리 분별을 못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을 모르니 숙맥이란 말이 생겼을 것이다. 

 

콩에 대한 속담은 참으로 많다. 남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콩을 가지고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라고 한다. 그런 사람은 '콩으로 두부를 만든다고 해도 듣지 않을 사람'이다. 반대로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잘 믿는 사람은 '콩을 팥이라 해도 곧이듣는다'라고 한다. 일에 참견하는 것을 ' 콩 심어라 팥 심어라'라고 한다. 근본에 따라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똑 부러진 사람의 말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것을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고 괜히 따지면 말한 사람 보고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라 한다. 또 '콩밭에 가서 두부를 찾는다'는 말은 일을 너무 성급하게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드문드문 일어나는 일은 '가물에 콩 나듯 한다'라고 한다. 이렇게 콩에 대한 옛말은 많다.

 

산과 들에서 자라는 콩과 식물이 많다. 풀로는 콩 팥 땅콩 토끼풀 결명자 완두 자운영 등이 있다. 나무로는 아까시나무 싸리 칡 등나무 자귀나무 주엽나무 회화나무 등이 콩과 식물이다. 콩과식물은 뿌리혹박테리아가 공생하기에 질소 성분이 적은 땅에도 잘 살고 땅을 걸게 한다. 콩은 단백질이 40%나 되는 주요 영양소이다. 그래서 콩으로 온갖 식품을 만들어 먹는다. 된장 원료인 메주콩은 우리나라가 원산지다. 메주로 장을 담그는데, 장맛을 보면 그 집 음식 맛을 안다고 했다. 콩나물은 비타민C와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들어있는 세계 유일의 우리 식품이기도 하다. 

 

보리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작물이다. 보리는 오랜 세월 우리의 귀중한 먹을거리다. 11월까지 보리를 파종하여 해동할 즈음이면 땅이 부풀어 서릿발이 생긴다. 이때 보리를 밟아서 얼어 죽지 않도록 한다. 그즈음 오는 눈을 보리 이불이라 했다. 6월 중순이면 보리를 베었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말이 있다. 망종(6.6 경) 전까지 보리를 베어야 논에 벼를 심고 밭갈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기를 놓치지 말라는 말도 된다. 가을보리는 봄에 심으면 열매를 맺지 않는다. 가을보리는 겨울이라는 고비를 넘어서야 한다. 인생도 그러하다. 

 

옛날에 보리를 베기 전까지 양식이 귀해 끼니를 때우기 힘든 시기를 보리고개라 했다. 보리고개가 태산보다 높았다. 많은 선조들은 보리고개를 넘기며 보리죽이라도 실컷 먹어 봤으면 하던 시기에 살았다. 학교 다닐 때 혼식 장려운동을 하던 때가 있었다. 쌀이 부족하여 시작한 정책이다. 보리밥을 먹으면 각기병이 안 걸린다고 하는데 설명은 들었지만 몸에 와닿지는 않았다. 혼식조사를 하면 도시락에 쌀밥을 싸 오는 아이들은 보리쌀을 몇 알 가져가거나 옥수수죽을 배급받는 아이들과 바꿔서 먹기도 했다. 그런 어려운 시기가 있었는데 세월이 가니 다 잊고 옛이야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보리쌀을 삶아 소쿠리에 담아서 부엌 살강에 넣어 두신다. 삼베 보자기를 덮어 놓은 것은 늘 보리쌀 삶은 것이었다. 쌀에 얹어 먹기 위해서다. 싹을 틔운 겉보리를 엿기름이라 하는데 그것으로 감주나 조청을 만들기도 했다. 보리밥은 여름에 어울리는 음식이다. 보리밥이 좋은 사람은 열이 있고 두통, 당뇨병이 있는 사람이고, 속이 차가운 사람이 보리밥을 먹으면 설사를 하는 점이 있다. 내게 필요한 음식을 알고 몸에 필요한 음식을 가려 먹으면 된다. 콩과 보리는 이제는 귀한 대접을 받는 곡식이 되었다. 콩보리밥은 몸에 좋은 숙맥이다.    

 

 

 

콩 종류 / 경기도 성남 (2023.10.31)

 

 

양대 / 경기도 양평 물소리길 (2019.6.4)

 

 

돌콩 (콩과) / 율골습지공원 (경기도 파주)

 

 

콩 / 온양온천장 (2017.12.29)

 

 

보리 / 경북 봉화 (2010.5.10)

 

 

보리 / 경북 봉화 (2010.5.10)

 

 

보리 / 자월도 (인천 옹진. 2014.5.29)

 

곡물 / 정선장 (2017.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