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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五穀) /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향곡[鄕谷] 2024. 7. 19. 07:20

말속에 자연 2

 

오곡(五穀) /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오곡엔 두 가지 뜻이 있다

 

 

곡식 중에 고대로부터 중요하게 여긴 5대 작물을 오곡이라 한다. 오곡은 중국 주례(周禮)에 처음 등장하였다. 주례에서는 벼, 기장, 피, 보리, 콩을 오곡으로 기록하였다. 오곡은 시대와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는 쌀, 보리, 콩, 조, 기장을 오곡이라 한다. 기장은 요즈음 생산량이 적어 대신 팥을 넣기도 한다. 단순히 오곡이 무르익었다고 할 때 오곡은 온갖 곡식이고,  오곡백과(五穀百果)는 온갖 곡식과 과일이다. 오곡밥이라 할 때 오곡은 〈동국세시기〉에 찹쌀, 팥, 수수, 차조, 콩으로 실었다. 앞서 쓴  '옛말 속 자연 1'에서 숙맥(菽麥. 콩과 보리)을 얘기하였기에 여기서는 나머지 곡식에 대해서 쓴다. 

 

 벼는 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재배하는 작물이다. 가장 오래된 볍씨가 그동안 중국이었는데, 수년 전에 청주 소로리 구석기 유적 토탄층에서 발견한 볍씨가 기원전 1만 5천 년 전으로 측정되어 세계 최고 볍씨로 공인되었다. 우리나라 벼 재배 역사가 엄청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 농토는 부의 상징이어서 한 마지기라도 농사짓는 땅을 더 가지려고 하였다. 어른들은 누런 벼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했다. 거기서 나오는 벼는 식구들 양식이었고 살림 밑천이었다. 옛날에는 물가 기준이 쌀이었고 머슴에게 주는 새경도 쌀로 쳐주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곡식 이삭은 잘 될수록 고개를 숙인다'도 같은 말이다. 속이 차고 된 사람일수록 겸손하다는 뜻이다. 옛말에  '가을 머슴꾼 비질하듯 한다'는 말이 있다. 가을걷이를 대강 한다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이 쓴 책 〈풍아유병(風雅遺秉)〉에서는 추수가 끝난 논바닥에 가보니 남은 나락이 많다고 했다. 머슴이 양식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귀신이 씨나락 까먹는다'란 말도 있다. 볍씨의 방언이 씨나락이다. 볍씨가 싹이 트지 않으면 '귀신이 씨나락 까먹었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얘기는 제사상을 못 차리면 '귀신이 (광에 들어가서) 씨나락을 까먹는다'라고 한다.   

 

벼는 도정하는 정도에 따라 8분도 쌀, 9분도 쌀이라 부른다. 껍질을 많이 벗길수록 미질(米質)은 좋지만 식량이 줄어 정부에서 통제하였다. 집에서 쌀로 막걸리를 만들지 못하게 단속도 하였다. 생산량이 많은 신품종 통일벼를 장려한 적이 있었다. 통일벼는 밥맛도 덜 하고 나중에는 수매량도 줄어 결국 사라졌다. 논일이나 밭일이나 손이 많이 간다. 벼는 모를 내는 것부터 추수할 때까지 쉴 틈이 없다. 우리가 먹는 곡식 한 알 한 알은 모두 농사꾼이 고생한 결과이다. 옛날에는 쌀을 아끼려고 절미단지를 두었는데, 이제는 쌀을 적게 먹는다. 쌀 소비 억제는 옛날 일이 되었다.

 

서속(黍粟)은 기장(黍)과 조(粟)을 말한다. 조와 기장을 구분하지 않고 서속이라 하는데, 어른들은 서숙이라 그랬다. 서속은 오곡에 속하지만 요즈음엔 거의 재배하지 않는다. 기장과 조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인데 삼국사기에 나오는 것을 보면 도래 시기가 빠르다. 곡식 중에 이삭이 가장 큰 것이 조(粟)여서 익으면 고개를 크게 숙인다. 반면에 낱알이 가장 작은 것이  (粟)이다. 조는 작아서 털기도 힘들었다. 탈곡기로도 힘들어 돌에 놓고 비비고 문지르고 하였다. 타작을 바심이라 하는데 조를 추수하는 것이 조바심이다. 털기 힘든 것을 초조해 하는 것에 견주어 조바심한다는 말이 나왔다. 조는 작은 것을 얘기할 때 등장하는 곡식이다. 온갖 참견을 다하는 사람을 좁쌀영감이라 하고, 한 말의 좁쌀이라도 찧어서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밥 할 때 넣어 먹는 메조가 있고, 떡이나 혼식할 때 넣어서 먹는 차조가 있다. 혼식을 하려고 조를 넣으면 양은 적은데 밥이 샛노랗다. 일당백이 조(粟)이다.  

 

 

벼 / 경북 안동 가일마을 (2011.10.1)

 

벼 / 인천 강화 주문도 (2016.10.2)

 

 

조 / 경북 영주 우무실 (2019.9.26)

 

 

조 / 경기도 가평 (2019.10.4)

 

 

방아 찧기

 

 

곡물 / 백암장 (2016.6.10)

 

곡물 / 원주장 (2016.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