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속에 자연 5
어사화(御賜花)
임금이 급제자에게 내린 꽃
우리나라 과거제도는 오래되었다. 고려 때 중국의 귀화인 쌍기의 건의에 의해 고려 때 처음 시작하여 조선시대 고종 31년(1894년) 갑오경장에 의해 폐지할 때까지 이어갔다. 능력에 의해 관리를 뽑는 과거제도는 벼슬과 양반을 이어가는 발판이었다. 식년(式年: 3년마다 과거를 보는 해) 봄에 초시합격자를 대상으로 대과를 치러 33명을 뽑고, 등급을 매기는 전시를 거쳐 최종 합격 하였다. 대과인 문·무과에 합격한 것을 급제(及第)라 했다. 그중에 최우수 성적자가 장원급제(壯元及第)이다. 합격자 명단을 쓴 방(榜)에 붙지 못하면 낙방(落榜)이다. 낙제(落第)도 낙방과 같은 뜻이다. 알성급제(謁聖及第)는 임금이 문묘에 참배한 뒤 실시한 비정규적인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을 말한다. 알(謁)은 배알 한다는 것이고 성(聖)은 문묘에 배향한 유교 성인을 이른다. 급제자에게는 합격증서인 홍패(紅牌)를 주고 국왕이 어사화(御賜花)를 비롯한 선물을 내리고 축하연을 베풀었다. 다음날엔 문묘에 참배를 하고 시가행진인 유가(遊街)를 3일간 하였다.
어사화(御賜花)는 과거 급제 후 임금(御)이 축하의 뜻으로 내린(賜) 꽃(花)이다. 어사화를 모자에 꽂고 스승, 선배, 친척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였다. 어사화를 줄여서 사화(賜花). 모자에 꽂아서 모화(帽花), 은혜로운 꽃이라 하여 은화(恩花)라고도 했다. 조선 전기 학자인 성현(成俔)이 1525년에 쓴 〈용재총화〉에는 어사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참대오리(대오리:가늘게 쪼갠 대나무 조각)를 종이로 감고 비틀어 꼬아서 군데군데에 다홍색, 보라색, 노란색 꽃종이로 꿰었다. 2개 대오리 밑부분은 종이로 함께 하고, 위에 대오리는 벌어지도록 했다. 어사화는 복두 뒤에 꽂고, 한쪽 끝을 명주실로 꿰어서 머리 위로 넘겨 입에 물고 3일간 유가를 하였다.』고 하였다. 전하는 유품으로 성이성 유품(한국국학진흥원), 용인 이 씨 종중 유품(용인시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종이 어사화가 남아 있다.
어사화는 접시꽃, 무궁화, 능소화, 개나리, 영춘화라고 전하는 내용이 있다. 이몽룡의 실제 인물이라 전하는 성이성(成以性)이 인조로부터 받은 어사화는 무궁화를 종이로 꾸민 것이라 하고, 다른 종가의 유품에서는 접시꽃이라 나온다. 능소화는 중국의 시경(詩經)에 나오는 소지화란 꽃나무를 능소화라 짐작하는데 중국에서 들어오기는 했을 것이나 기록으로 찾을 수 없다. 능소화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에야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아도 어사화를 내렸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것이 어떤 꽃인지 특정한 것은 없다. 숙종실록(숙종 31년)에 어사화가 사치스러워진다고 하고, 영조실록(영조 41년)에는 어사화는 몸체와 양식을 따르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현재 유품으로 남은 어사화와 기록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어사화는 특정한 꽃을 정하여 얘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생화는 아니고 종이꽃이라 보는 것이다. 생화를 모자에 꽂고 3일간 행진을 할 수도 없다. 그것이 어떤 꽃을 대상으로 만들었든 종이꽃인 것만은 맞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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