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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공양왕릉 / 고려 마지막 왕의 무덤

향곡[鄕谷] 2024. 9. 20. 10:07

 

삼척 공양왕릉

고려 마지막 왕의 무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추천동 (2024.9.17)

 

 

울진에서 북쪽으로 가는 7번 국도는 바다가 보이는 길이다. 울진 죽변에서 38㎞ 정도 가면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 고려 마지막 왕의 무덤인 공양왕릉이 있다. 왕이 피신해 있던 곳이라 궁촌이고, 고개는 공양왕 일족을 살해한 곳이라 하여 '살해재'이다. 일반 무덤보다는 커서 눈에 띈다. 층계 옆으로 붉게 핀 배롱나무가 죽 늘어섰다. 축대 위 묘소가 공양왕 3 부자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추석이 되었지만 벌초는 하지 않았다.

 

고려 우왕 14년(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실권을 잡은 이성계는 우왕과 그의 아들 창왕을 모두 왕 씨 후손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쫓았다. 그리고 고려 신종의 후손인 왕요(공양왕)를 본인이 싫다 하였으나 억지로 왕에 앉혔다. 그리고 3년 뒤 덕이 없다는 이유로 내쫓았다. 그리고 조선조에 공손하게 왕위를 이양했다(恭讓)는 의미의 굴욕적인 시호를 받고 원주 문막 부론면 배향산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고성군 간성을 거쳐 삼척군 근덕면 궁촌리로 유배지를 옮겼다. 1394.4월 궁촌에 온 지 한 달 만에 이성계가 보낸 사람에게 목이 졸려 목숨을 잃었다 고려 충신들은 산을 넘어 도주하다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관모(巾)와 관복(衣)을 벗으니 그곳이 백두대간에 있는 건의재(巾衣嶺)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공양왕 부부가 자결하여 경기도 고양에 능을 쓰고 삽살개가 끝까지 주인의 시신을 지켰다고 하였다. 그러나 삼척사람들은 미수 허목이 삼척부사로 있을 때 지은 〈척주지〉에서 궁촌에 왕릉으로 전하는 무덤이 있다는 내용을 가지고 공양왕 무덤으로 주장한다. 1977년 근덕면장이 허가를 받아 개봉하여 석관까지는 확인하였으나 궁촌 사람들이 능을 파헤지면 동리가 망한다고 반대해 그만두었다. 문화재당국은 〈세종실록〉에 '경기도 안성 청룡사에 있던 초상을 고양 무덤 곁 암자로 옮기라 명령했다'는 구절을 가지고 고양시 원당에 있는 고양왕릉을 공식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러한지 삼척 고양왕릉은 대접이 다르다. 나라를 잃으면 왕의 신세는 초라하다. 비석도 안 보인다. 상석에 덮인 풀을 들춰보았더니 글씨를 찾아볼 수가 없다. 같은 삼척에서 가까이 있는 이성계 5대 조인 목조의 아버지인 준경묘는 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한데, 이곳은 배롱나무로 만족해야 할 정도로 쓸쓸하다. 

 

 

 

 

삼척 공양왕릉 입구

 

 

삼척 공양왕릉 앞 배롱나무

 

 

삼척 공양왕릉

 

 

삼척 공양왕릉

 

 

 

삼척 공양왕릉

 

 

삼척 공양왕릉 앞

 

 

고양 공양왕릉

 

 

고양 공양왕릉

 

 

고양 공양왕릉 앞 삽살개 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