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歲寒圖)와 의리
완당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는 국보 180호로 지정된 걸작이다. 푸른 소나무가 있는 외딴집 풍경을 그린 세한도는 160여 년 전 조선 헌종 때인 1844년 완당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자신의 제자인 이상적을 위해 그려주었다. 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연경에서 방대한 서적 128권을 구하여 풍랑을 헤치고 절해고도 제주도까지 두 번에 걸쳐 전달하여 김정희의 유배생활을 외롭지 않게 하였다. 김정희는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어렵게 귀한 책을 구해준 이상적의 인품을 보고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제일 늦게 낙엽 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그에게 그림으로 답례한 것이었다. 완당은 그림에 붙어있는 발문(撥文)에서 세상의 밀물 같은 권세와 이득에 쫓아가는 세상 인심에 끝까지 의리를 지켜가는 제자에게 한없이 고마워 하였다. 참된 사람은 풍설에 시달리는 역경에 처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상적은 역관의 신분으로 12번이나 중국에 왕래하였고, 중국에서 시문집을 발간하였던 문인이자 시인이었다. 사대부들은 물론 임금 헌종도 그의 문집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자 세한도의 운명도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의 제자인 역관 김석준에게 넘어간 것으로 알려진 그림은 몇 사람을 거쳐 일제때 일본인 후지스카 손으로 넘어갔다. 완당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지스카는 경성제대 교수로 있으면서 세한도를 입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광복 후 서예가 손재형은 김정희의 대표작인 세한도를 반드시 되찾아야겠다는 일념으로 후지스카를 직접 찾아가서 설득하고 세한도를 찾아왔다. 손재형은 서예란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소장가는 다른 사람이 되었지만 그 값있는 그림을 값있게 만든 아름다운 집념에 모두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완당 김정희 세한도 (국보 제 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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