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은사(泉隱寺)
물 흐르듯 쓴 일주문 현판
전남 구례군 광의면 (2010.8.6)
실상사 쪽에서 달궁과 심원마을을 지나 뱀사골 계곡을 거쳐가면 성삼재 1090m 고지는 구불구불 휘휘 올라가야 한다. 성삼재 높은 고개를 오르내리면서 비는 오락가락하고 햇빛도 오락가락하고, 구름이 정령치와 성삼재를 숨겼다가 펼쳐 보이는 구름바다를 만났다. 자연이 연출하는 대장관을 감상할 기회가 흔치 않은데 노고(老姑) 할미가 오늘은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다.
성삼재에서 내려서는 고갯길이 끝나는 지점에 호젓하고 아름다운 천은사가 있다. 맑고 차가운 샘물이 있어 감로사였는데, 임진왜란으로 절이 불타고 새로 지을 때 구렁이가 나타나 잡았더니 물이 말랐다 한다. 샘이 숨었다 하여 절 이름을 천은사(泉隱寺)로 바꾸었더니 이번엔 화재가 잦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명필 이광사(李匡師)를 모시어 '지리산 천은사' 현판을 물 흐르듯이 써서 달았더니 화재가 멈추었다는 얘기다.
일주문 이광사의 글씨도 물 흐르듯 하지만, 우산도 없는데 마침 비도 오고 수홍루 지나 감로수 샘가에서 물 한 잔 들이키니 몸속까지 물이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호수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단아한 보제루가 있고, 이곳저곳 건물들이 정갈하다. 고티가 묻어나는 아름다운 절이다. 불사를 하는 절들은 이런 정갈하고 맵씨있는 가람을 미리 구경하고 나서 절을 꾸며야 할 것이다.
천은사에 오면 이광사의 글씨 말고도 보제루(普濟樓)에 붙은 수더분한 창암 이삼만의 글씨도 있다.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를 가면서 창암의 글씨를 모질게 비판하였다는데, 나중에 창암은 서운해하면서 제자에게 말하기를 추사는 조선붓의 거친 듯 천연스러운 맛은 모른다 하였다는 것이다. 추사가 유배에서 9년만에 풀려나서 창암 나름대로 성취가 있음을 깨닫고 사과하러 찾았으나 창암은 이미 3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유홍준 지음 완당평전 p520-522 참고). 사람들 삶이 다 다르듯 글씨에도 맛이 다른 것이다.
※ 천은사 보물 : 아미타후불탱화(보물 제924호), 나옹화상 원불도감(보물 제1546호), 천은사 괘불탱
(보물 제1340호), 극락보전(지방 유형문화재 제50호)
※ 가는 길 : 서울-대전-전주-남원-순천방향-밤재터널-구례-천은사 (3시간 반 걸림)
일주문 지나서 있는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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