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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우리도 산처럼/지리산

지리산 종주 3. 첫날, 성삼재에서 연하천대피소까지

향곡[鄕谷] 2013. 5. 24. 22:40

 

지리산 종주 3

첫날, 성삼재에서 연하천대피소까지 

 

성삼재-노고단대피소-임걸령-노루목-화개재-연하천대피소 (13.2㎞. 8시간 15분)

2013.5.19 (비 후 맑음) / 전남 구례

 

 

지리산은 품이 크고 웅장하다. 큰 산에 들자면 가다듬는 자세부터가 다르다. 그 너른 품을 밖으로만 돌아도 몇 날이 걸리고, 그 산 등허리를 타고 넘자면 깊고도 너른 품이 끝간 줄  모른다. 눈이 닿는 곳은 일부일 뿐 산은 너르다. 고려시대 문인 이인로그의 문집 파한집에서 이 산의 신비를 다 알고자 한다면 얼마만큼 세월이 걸릴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지리산 종주는 몇 년 전에 마지막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배낭을 둘러것은 지리산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어떤 산에 다녀오면 그 산에 대한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다. 

 

버스가 구례에 들어서니 밤새 내리던 비는 점점 가늘어지다가 아예 그쳤다. 노고단은 구름이 엷어지고 기운이 밝아졌다. 간절한 기도를 노고할미가 받아들인 탓일까. 노고단이란 이름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인 마고선녀(麻姑仙女)에 대한 존칭인 노고(老姑)와 제사를 드리는 신단(神檀)에서 유래하였다. 깊은 산 기운이 은거할만하다는 옛 문인의 표현이 실감이 나는 초입이다. 노고단을 지나면 임걸령까지는 평탄하다. 그래서 노고단에서 활을 쏘고 말을 달렸더니 말이 더 빨리 도착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임란 후 초적 두목 임걸년의 활동 무대였던 이곳 임걸령 샘은 물맛이 참 좋아 그냥 지나가면 후회막급이다

 

노루목을 지날 때쯤 비구름은 다 걷히고 하늘이 파래졌다. 가까이 반야봉이 눈에 들어온다.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산줄기가 마치 노루의 등줄기와 같고 그곳 바위가 노루의 머리와 같다고 하여 노루목이라 한다. 반야봉(1732m)은 지리산 3대 주봉 중 하나로, 지리산 중앙에 앉아 방향 가늠자 역할을 하는 산이다. 장엄하고 후덕한 앉음새를 지녔다. 아직은 시간이 일러서 낙조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지니고 지나간다.  삼도봉까지는 길이 편안하다. 전남·전북·경남 3도의 경계라 지금은 삼도봉(三道峰)이라 하지만, 한때 날라리봉이란 가벼운 이름을 가졌다. 원래 낫날과 같이 생겨 낫날봉을 그리 불렀다. 좌우 조망이 시원하여 쉬어갈 만하다. 멀리 노고단에서  구름바다가 이곳까지 이어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삼도봉을 지나면 너덜지대 급경사가 있어 배낭 무게 잡기가 조심스럽다. 화개재까지는 한참 더 내려간다. 지리산 주능선 중 가장 고도가 낮은 화개재는 화개장의 해산물과 산내와 운봉 특산물을 이고 지고 지나던 길이었다. 이정표에는 뱀사골 내려가는 길을 반선이라 표시하고 있다. 한번 내려왔으니 또 올라가는 길이다. 토끼봉이다. 반야봉을 기점으로 해서 정동 쪽인 묘방(卯方)이라 토끼봉라 했으니 한낮 반야봉을 보면 그 너머 해가 눈부실 수밖에 없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진다. 숲길 좌우로 구름이 넘나들고 낙조가 그 위에 턱 걸쳐 있어 구름 빛을 조금씩 붉게 물들이고 있다. 급할 것도 없지만 낙조를 그냥 보내기는 아쉽고 좋은 자리에서 낙조를 보고 싶은 마음으로 발길을 서둔다. 이 환상적인 풍광을 숲 사이로만 본다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어찌하랴 해는 지는데. 낙조는 구름 사이로 그저 붉게 넘어갈 뿐이다. 

 

 

 

깊은 산은 나무들 자태부터 다르다

 

 

 

 

 

 

 

  노루목에서 보는 운해. 오른쪽 가장 먼 봉우리가 노고단이다

 

 

 

 임걸령샘

 

 

 

산등성이에 가려진 운해로 피아골은 보이지도 않는다 / 삼도봉에서 

 

 

 

 삼도봉 / 경남 하동 · 전북 남원 · 전남 구례가 만나는 삼각점이다

 

 

 

 

  이곳이 토끼봉. 반야봉에서 정동 쪽 봉우리이다

 

 

 

  곰 출현 주의나 대처요령이 여러 군데 붙어있다

 

 

 

  거목들의 잔해도 산의 연륜이다

 

 

 

  숲 바깥은 구름이 둘러싸고

 

 

 

  구름 위로 해는 뉘엿뉘엿 지고

 

 

 

  첫날 묵은 연하천 대피소 / '붉게 타는 노을이 있는 샘'이 연하천이니 이름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