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읽는 옛시
눈보라 친 빈 창에는 촛불만 깜박이고
달이 쳐낸 솔 그림자 지붕머리 어른댄다
밤 깊어 산바람이 지난간 걸 알겠구나
담장 밖에 우수수 대밭에서 소리나서
- 이우(1469-1517), 우계헌에서
동동주가 뽀글뽀글 갓 익은데다
질화로엔 이글이글 숯불이 붉고
저녁 되자 날씨 마저 눈 오려 하니
이런 때에 술 한 잔이 없을 수 있나
- 백낙천(772-846. 당 시인), 문유십구
북악은 창끝처럼 높이 솟았고
남산의 소나무는 검게 변했다
송골매 지나가자 숲은 겁먹고
학 울음에 저 하늘이 새파래지네
- 박지원(1737-1805), 지독한 추위
골 메우고 산을 덮어 온 천지가 한 가지나
영롱한 옥세계요 반짝이는 수정궁궐
인간세상 화가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음양변화 그 보람을 그려내긴 어렵겠네
- 신흠(1566-1628), 큰 눈
홑이불 한기 돋고 불등(佛燈)은 어두운데
사미승은 밤새도록 종조차 치지 않네
객이 일찍 문을 열며 응당 투덜대겠지만
암자 앞 눈 솔가지를 누른 모습 보려하네
- 이제현(1287-1367), 산속 눈 오는 밤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누가 굽었다 하는가
굽을 절개라면 눈속에서 푸를소냐
아마도 세한고절(歲寒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 원천석(1330-?), 눈 맞아 휘어진 대를
하늘 임금 죽었나, 땅의 임금 죽었나?
푸른 산 나무마다 소복(素服)을 입었구나
밝은 날 햇님더러 조문케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밑에 눈물 뚝뚝 떨어지리
- 김병연(1807-1863), 눈
'글곳간 > 시(詩)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완영의 시조 / 깊고도 절절한 시 (0) | 2016.09.03 |
---|---|
산이 있는 옛시 (0) | 2016.02.16 |
봄에 읽는 옛시 (0) | 2013.04.16 |
술이 있는 옛시조 2 (0) | 2013.01.26 |
이규보 '눈 위에 쓴 편지' (0) | 2012.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