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여행 1
녹우당(綠雨堂)
고산 윤선도 유적지, 해남 윤 씨 종가
전남 해남읍 연동리 (2016.11.1)
해남은 나라의 땅끝 마을이 있는 고장이다. 해남읍에서 대흥사로 가는 길 왼쪽에 녹우당이 있다. 녹우당은 해남윤 씨의 종가로 조선 중기의 학자 고산 윤선도(1587~1671)와 그의 증손이자 선비 화가로 이름난 공재 윤두서(1668~1715)가 태어난 집이다. 마침 녹우당은 수리중이었고, 집 앞에는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윤효정이 아들의 과거시험 합격을 위해 심었다는 500년이나 된 은행나무가 우뚝하다. 가을 바람에 은행잎이 바닥에 노랗게 떨어졌다. 비가 오면 은행나뭇잎이 비처럼 떨어진다 하여 사랑채 이름을 녹우당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고, 집 뒤에 비자나무숲이 있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푸른 비 내리는 듯하다 하여 녹우당이라 했다는 얘기도 있다. 비가 올 때 은행나뭇잎이 쉬 떨어질 리 없고 후자가 맞을 듯하다.
윤선도는 봉림대군의 사부였는데, 봉림대군은 즉위하여 효종이 되어서 스승을 위해 수원에 집을 지어주었다. 윤선도는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뜯어 온 건물이 지금의 녹우당 사랑채이다. 녹우당을 왼편으로 끼고 돌아서 담 사잇길로 들어서면 중시조인 어초은 윤효정과 고산 윤선도의 사당이 있다. 중간에 대나무숲이 있고 끝나는 지점에 보호수로 지정한 큰 소나무가 서 있다. 뒷산은 아담하고 들어가는 길은 편안하다. 윤선도가 만년에 머문 보길도도 그러하였는데, 생기가 살아 숨쉬는 듯하다.
녹우당 들어가는 오른쪽에는 유물전시관이 있다. 몇 번 발걸음을 하여도 보지 못하였던 귀중한 유물을 볼 수 있었다. 윤두서 자화상(국보), 해남 윤 씨 가전 고화첩(보물), 해남 윤 씨 종가 문적(보물), 노비문서(보물)와 녹우당 현판 등이 그것이다. 풍경화와 진경산수화를 처음 선보인 윤두서의 사실주의 화풍인 자화상은 구도가 과감하고 표현은 면밀하다. 안광(眼光)의 기운이 그림의 등급을 결정한다 하였는데 수염과 눈빛이 살아 있다. 신윤복에 영향을 주었다는 손자 윤용이 그린 미인도, 동국진체의 원조인 옥동 이서의 녹우당 현판 글씨를 본 것도 녹우당을 찾은 큰 보람이다.
윤두서의 자화상과 풍속화가 미친 영향이 영향이 커서 그저 선비화가로서만 알고 있었지만, 그의 진면목은 기하책이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훨씬 앞서 그린 동국여지지도(보물)에서 실학의 정신을 알 수 있었다. 성호 이익도 윤두서의 칭찬을 듣고서 학문에 자신이 생겼다고 하였다. 말 한 마리를 그리기 위해 하루 종일 말의 모습과 움직임을 쳐다보았다고 하니 그의 철저한 탐구정신이 그랬다. 윤두서는 정약용의 외조부로서 학문적 영향을 미쳤다. 그의 탐구와 실학 정신이 다산 정약용에게 전해졌으니 인물을 배출하는 근원은 다 있는 법이다.
※ 교통편 : 해남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대흥사행 버스 이용, 윤선도 유적지 하차 : 4.4㎞. 16분
※ 고산윤선도 유물전시관 관람시간 : 09시~18시 (월요일 휴관). 관람료(성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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