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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곡 산 방 ( 鄕 谷 山 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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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산성에서 남한산성까지 / 눈과 바람, 겨울 산행의 맛을 보다

향곡[鄕谷] 2017. 1. 24. 16:00

 

 

 

남한산성 12

 

이성산성에서 남한산성까지 

눈과 바람, 겨울산행의 맛을 보다

 

춘궁동-이성산(이성산성)-향교 고개-금암산-425봉-남한산성 연주봉-425봉-마천동

이동시간 3시간 40분, 휴식 1시간 20분, 계 5시간. 2017.1.22. 맑음. -14~-11℃ 

 

 

 

이틀 간격으로 밤새 눈이 왔다. 그리 많은 눈은 아니어서 산행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남 미사리에서 춘궁동과 그 너머 남한산성과 암사동을 넘는 지역은 선사시대로부터 삼국시대이어역사의 무대가 오랫동안 펼쳐진 곳이었다. 아직 그 속 속을 다 알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산행 시작점 춘궁동은 춘장(春長)의 춘(春)과 궁말의 궁(宮)을 합한 이름이다. 춘장이나 궁말 모두 백제의 궁궐이 있었던 마을이었다. 산길을 들어서면 금방 나타나는 이성산성(二聖山城)은  백제의 왕자가 터를 잡고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위례성이 어딘지는 과거에 지리지나 역사서에서는 모두 충청도 직산(천안시 북면 위례산 부근)으로 추정하였으나, 다산 정약용은 아방강역고에서 광주고읍(하남 춘궁동)이라 주장하였다. 4만 7천 평인이곳 산성에서는 입구에 저수지 두 군데가 보이고, 조금 더 오르면 긴 사각형과 8 각형, 9 각형 건물터가 있다. 산성은 6세기 중반부터 착수하여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전반에 대부분을 쌓은 것으로 추정한다. 발굴 결과 608년 목간에 쓴 묵서가 나와 그 당시 관직과 문서행정 내용을 알 수 있고, 물품으로는 벼루, 나무빗, 그릇, 인형, 천, 짚신, 버들고리 등 그 당시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생활물품이 나왔다. 백제 물품은 없고, 고구려 유물이 조금이며, 대부분 신라의 것이라니, 터는 백제가 잡고 신라가 이 지역을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수 있다.

 

산성과 궁궐터가 있는 양지쪽에서 오르며 땀이 나서 겉옷을 벗었는데, 춘궁동과 광암동을 넘는 향교 고개는 북풍한설 칼바람이 몰아쳐 얼굴을 마구 후려쳤다. 바람이 겨울산행의 어려운 정도를 좌우하는데, 영하 10도를 밑도는 찬바람이 만만치 않다. 고개를 지나 산속으로 들어가니 바람의 강도는 덜해졌다. 병자호란 때 한겨울에 문무백관을 거느린 인조는 군사와 백성들과 남한산성 안에 갇혀 있었다. 급작히 성에 들어갔으니 식량과 옷이 없이 혹한을 지내야 하는 곤경은 미루어 짐작수 있는 일이다. 피난 결정도 허둥대었지만, 식량 준비도, 추격해 오는 적군을 중간에서 막을 군사도 없었다. 길은 편안하나 남한산성 연주봉으로 다가서니 바람은 더 차졌다. 혹한에 380년 전 그때의 고초를 생각하다니 그 일이 가까웠던 일인 것만 같다. 

    

교통편  (갈 때) 잠실역 8번 출구에서 30-5번 버스를 타고 저수지 다음 정류장인 이성산성에서 내린다

                (올 때) 마천역 버스 종점에서 잠실역 방향 버스는 여러 대가 있다.

 

길 안내

  ① 이성산성 정류장에서 내려서 진행방향 앞에 있는 건널목을 건너면 음식점 뒤로 이성산성 표지판이 있다.

  ② 이성산성터로 들어가 갈림길에서 위례 둘레길(남한산성)과 위례 둘레길(덕풍골) 중 후자를 택한다.

  ③ 이성산성 건물지에서 왼쪽으로 가면 남한산성 가는 길이다.

  ④ 표지판을 따라 끝까지 따라가면 남한산성 가는 길이다.

  ⑤ 가던 길로 되돌아와서 첫 번째 갈림길로 내려가면 경사가 완만한 하산길이다.

 

 

 

 

 

 

이성산성 저수지

 

 

 

 

 

 

 

이성산성 건물터

 

 

 

이성산성에서 향교고개를 넘어 남한산성 오르는 길

 

 

 

금암산 / 남한산성과 이성산성 중간에 있는 산으로 바위가 금빛을 띄어 금암산이라 한다

 

 

 

하남 방향 전망

 

 

 

마천동 하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