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강진, 장흥, 해남 탐방 ⑪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의 자취
전남 해남군 (2020.1.14)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은 해남 윤 씨 어초은공파 녹우당 집안의 유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국보인 윤두서 자화상, 보물인 고화첩, 종가문적, 노비문서가 대표적이다. 이곳을 대표하는 사람은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와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이다. 공재는 고산의 증손자이고, 제사를 폐했다고 천주교 박해의 대상이 되어서 순교한 윤지충(尹持忠 1759-1791)은 공재의 증손자이다.
윤선도는 서울 명동에서 태어났다. 양주에 별장이 있었는데, 홍수가 나도 별장이 있던 재산은 섬처럼 홀로 남아 사람들은 이 산을 고산(孤山)이라 했다. 지금은 남양주시 수석동으로 행정명이 바뀌었다. 윤선도는 이 산이 고고함과 외롭고 고독했던 자신의 인생과 닮았다고 해서 자호로 삼았다. 고산은 조선 중기 국문학의 큰 봉우리다.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산수의 미를 아름답게 엮어낸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잠시 벼슬에 나갔으나 보길도에서 삶을 마감했으니 그의 문학처럼 살았다.
윤두서는 녹우당에서 나서 녹우당에서 죽었다. 그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다는 중용에서 공손할 공(恭)을 취해 호를 삼았다. 공(恭)은 선비가 갈고 닦아야 할 덕목 중 하나라 생각하였다. 선비화가인 공재 윤두서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과 더불어 조선 후기 3재라 불렀다. 풍속화와 진경산수화를 최초로 선보였고, 사실주의 화풍도 개척하였다. 그의 자화상은 전후 후무한 그림으로 43세 때 그린 얼굴이라는데, 집안의 상례 등 현실적 제약으로 이상을 실천할 수 없었던 내면의 감정을 눈빛에서 느낄 수 있다. 그밖에도 그가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