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제비고깔이 그 자리에 있을까?
남한산성 (2020.8.7, 2020.9.1)
큰제비고깔은 여름에 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큰제비고깔이 피는 곳은 경기도 이북과 강원도 이북인데, 그것도 몇 군데만 있는 드물게 자라는 식물이다. 남한산성도 그중에 한 곳이다. 그래서 들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한산성에 피는 큰제비고깔을 찾아서 한여름에도 올라간다. 큰제비고깔은 꽃 뒤쪽이 비틀려서 고깔처럼 생겼고, 꽃 안에 수술이 제비가 들어앉은 모습과 비슷하여 큰제비고깔이란 이름을 얻었다. 큰제비고깔은 키가 1m 조금 넘게 자라서 큰 데다가, 뒤는 비틀려서 역동적이고, 보랏빛 꽃색이 위엄이 있다.
몇 년 전 한여름에 남한산성에 올랐다가 묘하게 생긴 이 꽃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보는 꽃이었고 특이하게 생긴 꽃이었다. 그 뒤 이 귀한 식물을 보기 위해 한여름에 두세 번씩 찾아갔다. 올해는 8월 7일 이 꽃을 보고서 아직도 못다 핀 꽃송이가 많기에 9월 1일 다시 찾아갔는데, 꽃은 물론 줄기까지 스러져서 사람들 발길이 적은 곳에서 흔적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여름 더위가 한창일 때 피더니, 지는 것도 여름 더위가 채 가기 전에 홀연히 사라졌다. 여름날 혼신의 힘을 쏟더니 그렇게 빨리 사라질 줄 몰랐다.
한번 성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쇠하게 된다. 그래서 열흘 붉은 꽃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쓰고, 권세가 십년을 가지 못한다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쓴다.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 양만리(楊萬里)가 '섣달 월계화 앞에서'란 글에서 쓴 只道花無十日紅(지도화무십일홍), 此花無日無春風(차화무일무춘풍)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그저 붉어도 열흘 못 간다고 말하지만, 이 꽃은 봄바람이 불지 않은 날이 없다'라는 뜻이다. 양만리는 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꽃을 피우는 강인함을 노래했다. 꽃은 지고 없지만 그 꽃이 삶의 지혜를 가르친다. 내년 여름에도 땀 흘리며 산을 오르련다. 들꽃 한 송이가 산을 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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