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의 꿈
며칠 전 산길을 가다가 도토리가 싹을 내린 모습을 보았다. 참나무 열매인 도토리는 밤과 같이 땅속으로 발아한다. 참나무란 나무는 없지만 참나무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의 공통 명칭으로 많이 쓴다. 껍질로 굴피집에 지붕으로 쓰는 굴참나무, 떡을 상하지 않게 감싼 떡갈나무, 신발 밑창으로 썼다는 신갈나무, 묵을 쑤기 제일 좋다는 졸참나무, 임금님 수라상에 도토리묵으로 올린 상수리나무가 참나무속 나무다. 삼국시대에도 90%가 참나무였다는데 지금도 참나무가 제일 많다. 가장 많은 새가 참새이듯, 가장 많은 나무이고 쓰임새가 많아 참나무라 한 것 같다.
도토리는 한 때 가뭄이 들거나 흉년일 때 구황식품으로 썼다. 산에서는 산짐승과 바구미 먹이로 쓰인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숨겨 두었다가 찾지 못하면 싹을 틔워 나무가 된다는 얘기를 한다. 멧돼지도 찾아서 먹고 사람도 주워가고 도토리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산길을 걷다가 보면 열매 아래쪽에 술잔처럼 생긴 깍정이 구경을 더 많이 할 정도이다. 도토리에게는 꿈이 있다. 때굴때굴 구르다 풀숲에 멈춰 서면 도토리에게는 꿈을 키울 시간이다.
도토리의 꿈은 큰 나무가 되는 것이다. 푸른 옷을 입고 파란 하늘을 보는 것이 도토리 꿈이다. 도토리가 뿌리를 내려 큰 나무가 되면 아낌없이 베푼다. 열매는 뭇 짐승의 먹이가 되고, 동물은 나무에 깃들어 수액을 먹고, 알을 낳고, 잎을 먹고, 숨기도 하여 신세를 진다. 새가 쉬고 싶을 때는 가지를 내어주고, 그늘을 만들어 노래하게 한다. 뿌리는 물을 머금어 땅을 적시고 잎으로는 산소를 나눈다. 나중에는 사람에게 몸을 내어 주기도 하고, 죽어서는 다른 나무에 거름이 된다. 한 알 도토리는 한 그루 나무가 아니라 숲 속 생태계가 되어 베풀고 끌어안는다. 도토리의 꿈은 아름답다. 진정한 베풂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자연의 향기 > 숲향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정사계곡으로 바람꽃을 보러 가다 (0) | 2021.03.09 |
---|---|
가시를 내는 나무 / 무엇이 변하여 가시가 되었나 (0) | 2021.03.06 |
무덤에 도래솔을 심은 뜻 (0) | 2021.01.31 |
나무는 겨울에 제대로 보인다 (0) | 2021.01.30 |
2020년 '올해의 꽃' (0) | 2021.01.07 |